북한 사람 북한 이야기

남한 수재민에게 과자와 라면만 지원한다면?

차라의 숲 2011. 8. 19. 15:32

올해 유난히 비가 많이 오죠?

오늘만 해도 해가 쨍하고 나는 것 같더니, 저녁 무렵에는 흩뿌리듯 비가 내리더군요.

지겹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지경입니다.


더 이상 장마철이 아니라, '우기'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닐지...

게다가 태풍도 연달아 지나가고,

시간당 100mm 이상 쏟아졌던, 사상 유례없는 집중폭우로

산이 무너지고, 무리하게 돌려세웠던 강물이 성난 모양으로 제 자리를 찾아갔으며,

서울 도심 한복판이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도 피해가 컸습니다.

지난 7월 27일, 산사태가 일어났던 우면산은 평소 제가 즐겨찾던 산책로여서

더욱 충격이 컸습니다.


예술의 전당 국악원 뒷편길로 늘 다녔던 우면산 산책로가

거대한 괴물에게 짓밟힌 듯 형체조차 찾기 어렵게 되어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진 : 연합뉴스, 우면산 산사태 복구 현장>


2002년도에 태풍 루사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강원도 강릉에도 

긴급구호활동을 하러 갔었는데,

이번엔 제가 사는 지역이라서 더더욱 안 가볼 수가 없었습니다.


수재민들의 아픔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긴급구호 자원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자원활동가들과 방배4동에 나갔는데,

지하 셋방과 아파트 지하 주차장, 지하 창고 등에 들어가

토사를 쓸어내거나 퍼올리는 작업들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기에

전혀 힘든 줄도 모르고,

치우는 일에 몰입하며 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방배2동과 4동, 구룡마을 등에서 함께 긴급구호활동을 벌였던 자원봉사자들>


제가 갔던 아파트 주민은 지하셋방에서 사는 모녀가정이었는데,

온집안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따님이 집에 있다가 갑자기 물길이 창문을 깨고 들이닥치자

지갑과 핸드폰만 들고 집밖으로 뛰쳐나왔다고 합니다.


온몸을 아프게 두드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급히 어머니를 찾았고,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그 30여 분 동안

이미 온집안이 물에 잠기고 말았다더군요.


옷 한 벌 멀쩡하게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 분들이 오히려 담담해하고,

도와주러 온 분들에게 상냥하게 웃어주는 모습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는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방배4동 동사무소에서도

피해상황을 접수받고,

자원봉사 인력들에게 일감을 배분해주느라,

공무원 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던지요.


고무장갑, 삽, 빗자루, 마대 등 장비가 필요하다고 하면 구해주시고,

자원봉사자들용 식수와 간식도 떨어질새라 쉼없이 날라다 주시고...

서울시에서도 국방부의 협조를 얻어서 고가의 중장비들을 동원해주고

수재민들을 위해 임시거처와 식수, 식량 등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수해를 입은 곳에서,

알게모르게,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아주 많은 분들이 애써주시고,

도와주셔서 그나마 빠른 속도로 복구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힘을 넘어선 자연재해 앞에서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인정()이 아닐까요?


그런데 똑같은 자연재해를 입었는데,

그 피해가 우리의 몇 십배 이상인 곳이 있습니다.

바로 윗동네입니다.


여러해동안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곡창지대라 할 수 있는 황해남도의 폭우피해가

그 어느 해보다 심각하다고 합니다.

올해 가을 수확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북한 정부는 이례적으로 수해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일차로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긴급의약품을 지원한 뒤 추가 지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정부에서도

약 50억 정도의 예산을 들여 수해지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어려움을 모른체 하지 않고 돕겠다고 나선 것에 일단 반가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보내겠다는 지원 물품을 보고는 뜨아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영유아용 영양식 140만개와 영유아용 과자 30만개, 초코파이 192만개, 라면 160만개(약 50억원)


저쪽에서는 시멘트와 복구 장비 등 물자 지원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과자와 라면, 초코파이를 주겠다니...

이게 과연 적절한 지원 물품인가...의문이 남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북한에는 굴삭기 한 대 변변한 게 없어서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피해현장에 동원돼

지게를 지고, 삽과 곡괭이로 모든 복구 사업을 해내야 합니다.




<사진: 북한 2007년도 수해 피해 사진(위)과 복구 작업 모습(아래)>


가뜩이나 먹은 게 없어서 힘이 없는 주민들이

과연 무거운 토사와 버럭들을 얼마나 실어나를 수가 있을까요?


먹고 기운 내시라고 식량을,

좀 효율적으로 복구하시라고 굴삭기 등의 중장비를

지원하는 게 합리적인 일이 아닐까요?


좋은벗들 '오늘의 북한소식' 제 416호 논평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었네요.



[편집자주]

과자와 라면 지원, 유감이다


남한은 올 여름 유례없이 기나긴 장마와 강도 높은 집중폭우, 그리고 연이은 태풍 피해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서울이라고 해서 피할 수는 없었다. 광화문과 테헤란로, 강남 일대가 물에 완전히 잠겼고, 우면산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나 주민들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컸다. 수재민들에게 가장 시급했던 것은 바로 먹을 것과 식수, 의약품, 그리고 복구 장비와 인력 등이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들에게 과자와 라면, 영유아용 간식만 지원한다고 생각해보자. 적절한 지원이라고 납득할 사람이 남한 국민 중에 과연 있을까? 북한 정부가 국제사회에 수해 지원을 공식 요청한 것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준의 피해를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먼저 요청해야 지원해줄 수 있다고 했던 한국 정부로선 지원을 안 해줄 이유가 없다. 문제는 지원물품이다. 북한 정부와 한국 정부는 가장 필요한 지원 물품부터 협의해 하루빨리 수재민 구제에 힘써주길 바란다.


                    <목 차>


5시간 물 폭탄에 5만여 정보 침수
인명피해 속출, 이재민들은 먹을 것 호소
정부 관료들도 망연자실
수해복구 동원에 장삿길 막혀
농민들 피해가 제일 심해
강원도 논밭도 순식간에 황무지로
[논평] 수해 식량과 복구 장비가 시급하다


[논평]

수해 식량과 복구 장비가 시급하다


근 한 달 동안 정신없이 쏟아진 물 폭탄에 북한 전역에서 절망의 한탄소리가 가득하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장마와 제5호 태풍 ‘메아리’, 그리고 제9호 태풍 ‘무이파’에 이르기까지 집중폭우는 잠시도 쉴 틈 없이 무섭게 몰아쳤다. 북한 정부는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피해 상황을 공개하고,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했다. 국제적십자사(IFRC)에서는 일단 3천여 개의 응급구호세트를 지원하고, 기타 필요 물자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도 지난 8월 3일, 생필품 및 의약품 등 50 억 원 상당의 물품 지원을 북측에 제의했다. 북한 정부가 지원을 요청하고, 남한 정부가 재빨리 화답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상호협의하고, 합의점을 찾아 하루빨리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수재민들에게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식량과 마실 물이다. 주민들은 올해 유난히 힘든 춘궁기를 보냈다. 도시 주민들은 작년부터 장사가 안 돼 고단한 상반기를 보냈고, 농민들은 6월 말 햇감자가 나올 때까지 풀죽으로 연명해야 했다. 8월에 나올 옥수수만 바라보고 버텨왔는데, 집중폭우에 옥수수 대가 꺾이고 옥수수 밭이 형체 없이 사라졌다. 상수도에까지 범람한 흙탕물에 식수조차 마땅치가 않다. 수인성전염병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춘궁기를 거쳐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주민들에겐 당장 먹을 음식과 맑은 물, 그리고 의약품이 필요하다. 특히 황해남도 지역에서는 탁아소, 유치원 등이 완파 혹은 반파된 곳이 많아 영유아 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도로와 철도, 제방 등 공공시설과 침수 주택 등을 개보수할 수 있도록 건설 자재와 복구 장비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지난 7월 29일, 서울시는 우면산 산사태가 났을 때 국방부 등의 협조를 받아 약 2,000여 대의 복구 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다. 굴착기와 대형 트럭 외에도 소방차와 70여대의 펌프, 체인톱 등 각종 장비가 있었기에 토사와 뿌리째 뽑힌 나무, 자갈 등을 4-5일 만에 치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중장비로도 거대한 바위나 통나무 등을 치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북한의 수해 복구 현장에는 제대로 된 장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어른아이, 여자남자 할 것 없이 그저 지게와 삽, 곡괭이를 들고 맨손으로 복구 작업에 나설 뿐이다. 대민지원을 나선 군인들도 허기진 상태에서 무거운 버럭을 옮기지 못해 허덕거리는 형편이다. 토사를 퍼 올릴 굴삭기와 흙을 실어 나를 대형 트럭, 그리고 논밭에서 물을 빼낼 양수기와 발전기가 절실하다. 주택 개보수에 필요한 시멘트와 철근 등 건설 자재도 필요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다. 이번 물폭탄에 남한 수재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북한 동포들을 생각해보자. 최고의 복구 장비와 식량, 기초의약품 등이 신속하게 지원되어도 수재민들의 상실감과 아픔은 결코 쉽게 아물지 않는다. 하물며 맨 몸으로 황무지를 맞닥뜨려야 하는 북한 주민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들에게는 당장의 배고픔과 전염병이 가장 무서운 적(敵)이다. 가을 수확을 전혀 기대할 수 없어, 앞으로의 생계 문제를 생각하면 더욱 절망적이다. 당장은 임시 거처나 비닐움막에 몸을 피신할 수 있지만, 곧 계절이 바뀌면 찬바람을 막을 집도 절실하다.


식량과 시멘트 등 물자와 장비를 요청한 북한 정부의 요청에 한국 정부는 영유아용 간식, 과자와 초코파이, 라면을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저쪽은 심장수술 장비를 요청하는데, 여기에서는 손가락 상처에 바를 연고를 주겠다고 한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 남아야 하는 것은 결국 인정(人情)이다.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는 식량과 식수, 의약품, 그리고 수해 복구를 위한 건설 자재, 그리고 중장비 등을 지원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하루빨리 덜어주었으면 한다(끝). 



초코파이에 유감은 없습니다만,  수재민들에게 초코파이라...

아이들이 좋아하기는 하겠지만, 

과연 수재민들에게 절실한 물자일지...


방배동 수재민들이나 구룡마을 수재민들에게 과자와 영유아용 간식만 주면서,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다 끝냈다며 손 턴다고 생각하면...

수재민들이 고마워할지...오히려 더 마음 상해하지 않을지...


논평에서 언급된 것처럼, 역지사지를 정말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왕 주기로 한 거, 정말 통크게 지원할 수는 없는 걸까요?

한국 정부의 지원이 그저 생색내기용인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