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이야기

일송정에서 불렀던 고향의 봄

차라의 숲 2011. 8. 16. 22:13


지난 12일 금요일, 일송정에 올랐습니다.

7일부터 내내 비가 내리다가 일송정에 오르기 하루 전날인 11일(목요일)부터 쨍 하고 해가 내리쬤습니다.


태풍 무이파가 서해안으로 상륙해 중국 대련 지역을 강타할 것이라는 예보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걱정들이 많았나봅니다.  사실 저도 떠나기 하루 전날, 밤새 역사기행 준비를 하면서 무이파가 어느 쪽으로 향할지 근심 속에 지켜보았더랬습니다. 다행히 비행기 뜨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고, 무사히 심양에 도착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가 내렸습니다.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요. 


지인들의 따뜻한 관심과 걱정 덕분인지, 8월 7일부터 시작된 좋은벗들 제17차 역사기행(안내: 법륜스님)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태풍 경보로 3일 내내 폐쇄되었던 백두산도 우리가 가던 날 기적처럼 오후에 문을 열었고,

3대의 공덕을 지어야 볼 수 있다는 신비로운 천지(하늘못)도 환호성 속에 달려가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가슴 벅찬 감동의 순간들이었습니다. 13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한 마음이 되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때문에 우리는 소리죽여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가슴으로 부르며 왠지 모를 설움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12일 금요일 새벽 4시,

왕복 4시간에 달하는 청산리전투터 순례를 시작으로,

오전 11시경에는 일송정에 올랐습니다.


올라가는 도중에 우연히 강경애 문학비를 만났습니다.


                                                                     <사진: http://j.mp/qA1QHj 강경애화보 중>


학창시절, 얼마나 감탄하며 읽었던 작가였던지요.

 

일제치하 우리 민중의 삶을 소름끼치도록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들을 읽고,

가슴 미어지도록 아파했던 기억이 나 잠시 묵념을 했습니다. 

일송정 가는 길에 문학비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기에

더욱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강경애에 대해 썼던 글을 읽으실 분은 요기를 클릭 ^^)


<사진 : 일송정에서 바라 본 해란강>


130명의 참가자들은 한이경님의 청아한 목소리로 선창된 '선구자'를 따라 불렀고, '광야에서'와 '고향의 봄'을 연달아 불렀습니다.


저는 해란강을 바라보며 조용히 노래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 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경남 창원이 고향인 아동문학가 이원수님이 작사하고, 홍난파님이 작곡한

우리 민족의 대표 동요이지요.


어릴 적부터 하도 많이 부르고 들었던 곡이라

평소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일송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듯 불러보는데

갑자기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날 새벽, 좁디 좁고 거친 청산리전투터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산화해갔을 독립투사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규군을 맞아 거친 야산에 몸을 숨기고,

잠시도 쉴 틈 없이 매섭게 몰아부쳤던 독립투사들...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집 떠난 지 어언 몇 년이 지났을까.

아내의 뱃속에 남겨둔 아이는 이제 몇 살이 되었을까.

늙은 부모는 끼니라도 제 때 잘 드시고 계실까.

내 어린 형제는 혹여 나 때문에 일본 순사들에게 해코지 당하지는 않았을까.

어린 시절, 꽃대궐 같던 내 고향은

봄에는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고,

여름에는 청포도가 익어가고 있겠지.


정든 고향을 떠난 그분들의 마음에 저도 모르게 빙의가 되면서,

그저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누구 덕분인지 다시금 되새기며

'고향의 봄'을 가슴 속으로 흐느끼며 불렀습니다.


어제는 8월 15일 광복절이었지요.

이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키다 산화해 가신 모든 영령들께

마음 깊이 감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