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이야기

스무살, 내 인생을 바꾼 책

차라의 숲 2010. 10. 22. 13:37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저 | 돌베개 | 1997년 01월

 

오늘 우연히 신영복 선생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절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대학생이던 시절에 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를 읽고 받았던 감동이 다시 새록새록 살아났다.

 

그 땐 뭘 해도 고민이 많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스물 초입의 어린 나날은 왜 그리 쓸데없이 암담하기만 했는지 모르겠다.

 

뭐가 될 것 인가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가치관으로 살 것인가...가

당시 좀처럼 뚫리지 않던 내 화두였다.

 

스승이 필요했으나

당시엔 아무도 없었다.

 

학교 선배도 과 동기들도

그 누구도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모두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토플책과 토익책을 들고 도서관 붙박이를 하거나

일찌감치 해외여행을 가거나

유학준비를 하거나...

 

당시 IMF를 당하기 직전,

한국이 샴페인을 터뜨렸던 최절정의 시기에

대학을 다녔던 나는,

자아계발에 열을 올리던 그런 시기에

'어떻게 살아야할 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할 지'를

고민하던 애송이였다.

 

무엇이 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엇이 되어봤자 행복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저런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한 자락에 우연처럼 접했던 책이

바로 신영복 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 였다.

 

다른 이들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먼저 감동을 받았다는데,

나는 나무야 나무야와 먼저 연을 맺었다.

 

그리고 수많은 명구들에 찌릿찌릿 전율감을 느끼며

때론 눈물흘리며

그렇게 새기고 또 새겼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어렸던 나는 세상의 불평등이 못내 불만이었다.

성차별, 연령차별, 지역차별, 인종차별...

소외되고 힘없는 약자들의 고통을 그대로 모른체하기가 힘들었다.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돕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자신이 없었다.

이런 꿈을 얘기하는 게 챙피했다.

비웃음을 당할까 두려웠다.

 

그러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말씀에 용기를 얻었다.

비로소 나도 우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어리석지만 우직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좀 더 당당하게 꾸기 시작했다.

 

그 꿈이

지금의 인연을 만들었고,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도

다른 이를 위해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진실로 감사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게도 책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바른 길로 이끌어주시는 스승님이 계시고,

같은 꿈을 향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소중한 벗들이 있음이 진정 감사하다.

 

내 꿈은 스무살 한 때로 끝나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 구체적이 되고,

내가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

또 내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는 느낌이 들어 정말 좋다.

 

진실로,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 지 말할 수 있어

감사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배고픈 아이는 밥을 먹고,

아픈 이는 치료를 받고,

배워야 할 아이들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아무리 미약한 힘이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할 것이다.

앞으로도 쭉 이 길을 걷다보면,

그렇게 언젠가는

정말 꿈이지만,

"기아 없는 세상"

"고통 없는 세상"

"전쟁 없는 세상"

그런 꿈같은 세상이 올 날이 있지 않을까.

 

"어리석은 자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킨다"는

겨자씨만한 믿음 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이,

스승님과 도반들과 함께 이 길을 걷다보면,

이 생이 아니라 해도,

몇 겁을 거듭하더라도,

이 원을 놓치지 않는다면,

결국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