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이야기

대한민국 원주민은 누구인가?

차라의 숲 2010. 10. 22. 13:56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할까요?

아 그래요.

대학로에 간 것부터 시작하죠.

 

갑자기 책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중앙국립도서관 말고,

영풍문고나 교보문고 말고,

인문학책들이 그득 그득 쌓인 그런 서점에 가고 싶었어요.

 

경복궁역에 있다는 길담서원엘 갈까,

대학로에 있는 이음아트에 갈까...하다가

발길이 대학로로 향하더군요.

 

"혜화역 1번 출구, 동숭아트센터 방향 30m"

인터넷에서 찾아본 주소대로 갔더니, 

아담하고 깔끔한 곳이었습니다.

디카를 가지고 갔더라면 찍어올텐데...

 

책들이 자유롭게 놓여있거나 꽂혀있는 게

헌책방 비스무리한 느낌도 나구요.

아무렇게나 있는 것 같아도

가지런히 주제별 분류가 돼있었어요.

 

계산대에 앉아계신 분에게

인사를 하고, (저도 모르게 꾸벅 인사하게 되더군요.

다른 대형서점과 다른 작은 책방의 맛이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내 안에 이런 탐욕이 숨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책들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냥 목록을 읽는 것만으로도,

관심있는 제목의 책을 빼들어 설렁설렁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잘도 가고,

마음은 풍요로워졌습니다.

 

그 곳에서 발견하고,

구입까지 한 책이 바로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입니다.

 

 

 

최규석 글,그림 | 창비 | 2008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만화책인데요,

예전에 한겨레21에 연재할 당시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연재된 것을 볼 때는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단행본으로 묶어져 나온 책을 보니,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과 웃음, 그리고 따뜻한 감성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게 아니겠어요?

 

작가가 진주 사람이대요.

 

진주는 그렇게 못 살았나 싶을 정도로..

뭐 우리 집도 어렸을 때 가난했지만,

작가 그림 속의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같은 시대를 살면서

정말 다른 세계를 살아온 듯한...

 

그런데 읽다보니 그 위로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삶이 겹치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경험과

삼촌들 그리고 이모들의 성장기가 겹치더군요.

 

무엇보다

가족들의 삶을 다시 관조하는

작가의 시각이

참으로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쥐잡듯이 패는 아버지가

폭군으로 그려질법도 한데,

오히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몇 번이고 반추하면서

그의 고단함을 이해하는 모습에서,

이 작가가 지닌 인생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한 살 어린데,

경험의 차이가

사람을 이해하고, 삶을 통찰하는 수준의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암튼 말이 길어졌지만,

강추합니다.

 

비루하지 않은 가난함,

그리고 유쾌함,

삶에 대한 긍정,

평범한 내 이웃들에 대한 애정을

꼭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