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이야기

대북지원, 세종대왕이라면?

차라의 숲 2010. 10. 22. 13:50

박현모 저 | 푸른역사 | 2007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 앞에

우리의 가장 위대한 군주, 세종대왕이시라면,

어떻게 이들을 구휼하셨을지 이 책에서 배웠습니다.

 

세종대왕 치세는, 즉 재위기간 32년 내내 태평성대였던 것은 아닙니다.

즉위하자마자 7년의 연이은 가뭄과 대기근, 수도 한양 대규모 방화사건,

유감동 등의 대형 섹스스캔들 등으로 오히려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 더 많았죠.

 

그 중에서도 가뭄은 특히 백성의 안위를 무엇보다 중시 여기던 세종대왕으로선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계속되는 기근에 하나 둘 스러져가고, 굶주림에 지쳐가자

광화문 사거리에 큰 밥솥을 걸고 죽을 끓이게 합니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하루에 적어도 한 끼 정도는 먹을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해결책은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백성들이 속수무책 굶어죽어가는 것만은 막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그리곤 직접 그 자리에 나가 백성들이 어떤 모습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시곤,

그 피폐한 모습에 가슴이 아파

돌아오자마자 경회루 옆에 작은 초가집을 지으라 명하십니다.

절대 새 목재를 쓰지말고, 쓰고 남은 목재로 초가집을 지으라고요.

 

그리곤 백성은 굶주림에 고통받는데, 군왕이 어찌 홀로 편안히 먹고 잘 수 있겠느냐며,

그 초가집으로 거처를 옮기십니다.

먹고 자는 것은 물론 집무도 그곳에서 보십니다.

 

온 대소신료들과 소헌왕후께서 읍소하며 말렸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활을 장장 2년 7개월 동안이나 하십니다.

 

제 생각엔 끽해야 한두달 하고 말았겠지 싶었는데,

거의 3년 가까운 시간을 백성의 아픔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가장 낮은 곳에서 생활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군왕이 있었더랬습니다.

그저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의 연구를 거듭하십니다.

남들이 자연 현상은 하늘의 뜻이라고 말할 때,

당신은 하늘과 별과 해와 달을 연구하게 했습니다.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명나라에서는 제후국들이 독자적으로 하늘을 관찰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로 명나라와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원치않았던 국내 정치인들의 반발 역시 매우 컸습니다.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천문관측은 세종대왕께서

정치인들과의 지난한 논쟁과 설명, 설득과 이해를 통해 이루어낸

소중한 결실입니다.

 

또 가뭄과 홍수는 하늘이 진노하는 것이라고 믿을 때,

가뭄과 홍수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어떻게 구휼할 것인지,

그 원칙과 방법을 고민하셨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다음의 백성 구휼 원칙입니다.

 

인도주의 지원을 해주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세종께서 기근을 구제한 방법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우선 기근을 생각하는 방식이 독특했다. “천재(天災)와 재이(災異)는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다만 구휼하는 조치는 사람에 따라 잘할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다”(19/1/12). 가뭄과 홍수 자체는 피할 수 없지만, 그 대응은 사람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판중추원사 안순의 제안과, 즉위 초년 황희가 강원도에 행했던 사례를 토대로 해 만든 다음의 구휼 원칙은 그 같은 당신의 생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첫째, 기민(饑民)구휼 장소를 남자와 여자, 환자와 건강한 자를 구분해 설치하라. 기민일수록 더욱 더 체면을 지켜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을 편히 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둘째,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지 말라. 고향을 떠나 돌아다니는 그들의 자취[根脚]를 묻기 시작하면 비록 배가 고파도 올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아전이 아니라 마음 착한 중들에게 음식 나눠주는 일을 맡겨라. 아전에게 맡기면 “구휼한다는 이름만 있고, 그 실상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구휼과 관련해 포상과 상벌을 시행하라. 그래야 수령과 아전이 기근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찰사에게 그 일을 위임하라. 중앙에서 모든 상황을 알 수도 없을뿐더러 시의적절한 대응을 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19/1/2).

 

 

우리에겐

이렇듯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의 인권을 결코 놓치지 않았던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라면이나 밀가루는 지원할 수 있어도

절대 쌀만은 지원할 수 없다는 지금 정부의 태도가

과연 인도주의 원칙에 맞는 일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인권과 인도주의의 원칙...

북한 주민들에게

어서 빨리 먹을 수 있는 식량과 평안이 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