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 북한 이야기

마산 통일 아지매에게 평화통일운동이란?(인터뷰 기사-1)

차라의 숲 2011. 9. 12. 21:16

 

아래는 좋은벗들에서 발행하는, '오늘의 북한소식' 387호에 실린 유애경님 인터뷰 기사다.

 

 

[통일민들레]

 

(사)좋은벗들 회원이자 독실한 불교신자인 유애경님이 지난 12월 25일부터 1월 3일까지 열흘 동안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한반도 전쟁반대와 평화를 위한 참회기도”를 했습니다. (참회기도란, 지난 날의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염원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연평도 사건이 터지고,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게 얼어붙었습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전쟁의 기운이 가시지 않아 여전히 불안한 정국입니다. 북녘 동포들의 추위와 굶주림에 그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간절히 평화와 대북지원을 염원하는 유애경님의 인터뷰 기사를 두 번에 걸쳐 실으려고 합니다. (이 기사는 좋은벗들 후원회원소식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며 엄동설한 10일 동안 서울 광화문에서 기도한

유애경님의 ‘평화운동’ 이야기

 

 

2008년에도 북한 돕기 할 때 마산에서 20일 동안 길거리에서 모금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요.

 

그동안 기도는 계속 해오고 있었어요. 우리가 1997년도에 북한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100만인 서명 운동했잖아요. 남북관계가 어렵던 그 시절에도 했었고, 2008년도에도 춘궁기 때 북한 농민들이 많이 죽어간다고 또 북한 돕기 서명 운동을 하면서 식량 지원해달라고 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자신감도 있었어요. 그 당시 어떤 분이 북한처럼 나쁜 놈들을 왜 도와 주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비난하던 분이 있었는데, 제가 매일 그 자리에서 모금하고 서명도 하고 있으니까 모금 마지막 날 밤에 만원을 주고 가셨어요. 그렇게 성을 내시던 분이 도와주시다니 연극 대본처럼 기적적인 일이 일어 난거죠. 이번에도 제가 기도한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참 많이 도와주셨어요.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그리고 날씨가 춥다 해도 계속 군사훈련이 있고 남북관계는 점점 더 얼어붙고 이러니까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려면 추운 날 하는 게 더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사진1. 유애경님이 지난 12월 25일부터 1월 3일까지 광화문 세종대왕상 옆에서 10일동안 참회기도를 했다>

 

 

하루 몇 시간 하신 거예요?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까지 10시간. 그냥 3천배 한다는 마음으로 숫자는 헤아리지 않고 그냥 했어요.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화장실 다녀오면 방석이랑 자리가 다 날아가 버려서 주변에 계시던 경찰이 주워서 가져다주기도 하고, 한번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자리를 옮기려고 했는데, 여기 가면 저리 가라, 저리 가면 딴 데 가라 몇 번 쫓겨 다니기도 했어요. 눈은 계속 내리고, ‘여기서 말아야하나’ 생각도 들고. 바람이 많이 부니까 삐뚤어진 현수막을 지나가던 초등학생이 바로 잡아주기도 하고 시민들 중에는 격려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고마웠던 것은 추운 날 한다고 따뜻한 차도 끓여다주기도 하고 도시락도 싸다주고. 혼자 기도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혼자 한 게 아니었지요. 현수막을 걸어놓지 않고 바닥에 펼쳐놓았기 때문에 지나가는 분들은 수고한다, 자기도 1인 시위하는 사람인데 자기는 좀 따뜻한 날 골라서 한다고 애쓰신다고 따뜻한 차랑 과일주스도 가져다주시고 며칠 하다보니까 차를 타고 가면서 “수고합니다~!”하고 외치는 분들도 계시고 시민들의 호응이 정말 감사했어요.  

 

 

다 그렇게 좋은 반응만 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4일 째 되는 날은 (북한을) 강력하게 응징하라는 시위가 있었거든요. 그 시간 동안에는 하지 말라고 해서 잠시 보고 있었어요. 그때 연세 드신 분들이 화가 나니까 “강력대응해라”, “강력히 응징하라”고 하더라고요.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다 원하지 않아요. 안 그렇겠습니까. 북한에서 쏘아서 내 아들이 죽고 하는 걸 보면 화가 나죠. 그러니까 “때려버려라, 죽여 버려라”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진짜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요. 화나는 순간에야 정말로 “죽여 버려라, 가만 안 놔둔다”고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대지만, 그 때 그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아니잖아요.

 

실제로 대통령의 위치에서는 개인적으로 주고 싶다고 해도 북한의 공식적인 사과 없이는 (대북지원이) 힘든 게 사실이잖아요. 그럼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저는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겠다. 사실 저도 기도안하면 잊어버리거든요. 기도하는 순간만큼은 깨어있을 수 있어 감사했어요. 함께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받으면서 내가 커지고, 남을 위한다고 하지만 남을 위하는 게 아니고 내가 행복하구나. 연말에 북한, 전쟁 이런 거 조금 생각했다고,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딱 그 느낌이었어요(웃음).

 

 

시위나 기자회견도 있는데 굳이 기도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시위하고 잘못된 것을 항의하는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진정한 참회는 소원성취로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나 혼자라도 우선 해보자. 정부가 요구하는 게 북한의 공식적인 사과니까. 보는 관점이 다르잖아요. 북한도 할 말이 있고 그 입장도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남한 사람인데 북한에 참회를 해야 그들도 미움이 녹으면서 총을 쏘지 않지 않을까. 그 사람이 옳아서가 아니고 그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요즘은 ‘비는 데는 하늘도 못 이긴다’ 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나요. 그래서 좀 더 열심히 빌어야 되겠다 했지요(웃음).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잖아요. 원한은 또 다른 원한을 낳고, 그래서 옛날 성인들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그게 나한테 좋으니까. 예수님 말씀 중에서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듯이, 어쨌든 집에서도 부부가 싸우면 자식들이 상처를 받고 제대로 자라지 않잖아요. 남북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분단이 되어있으면 결국은 우리들이 상처받고 힘들어지는 게 현실이지 않나 싶어요.

 

 

5일쯤 지났을 때 그 엄동설한에 절 하시느라 몸이 많이 상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때 뵈니까 얼굴이 환하고 좋으셨어요. 그게 참 궁금했어요.

 

저는 욕심으로 한 게 아니고 하나하나 나를 새기면서 참회의 절을 하고 옷도 좀 많이 입었고 천천히 하니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손이 많이 시리기는 했지만 화장실 오고 가면서 손도 좀 녹고. 한 시간 지나니까 손이 얼 것 같더라구요. 장갑 세 개 꼈지. 동상 걸리면 안 되잖아요.

 

 

<사진2. 현수막에는 이렇게 쓰여있다.“이땅에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7천만 온 겨레는 평화를 염원합니다”“인도적 지원을 간곡히 요청합니다”>

 

  <사진3. 올 겨울에는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유애경님은 영하 18도의 엄동설한 속에서도 하루 10시간 이상 같은 자리에서 간절히 평화를 염원하는 기도를 했다. 옆에서 근무하던 경찰들도 도움을 주었다.>

 

 

우리가 준 쌀이 총알 되어 돌아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처음에 잘 몰랐을 때 북한에는 정말 나쁜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 새터민들을 만나보면 참 마음이 따뜻하고 그래요. 북한에 있는 분들이 우리랑 똑같이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게 전부인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 하잖아요. 전쟁하는 시절에도 포로들한테는 약도 주고, 밥도 먹이는데, 다 같은 우리 동포들이고 통일이 되면 다 우리 이웃이 될 사람들인데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의무 아닌가요? 그러기 때문에 그게 다 군대에 가니 못 보낸다고 안 보내는 것은 맞지 않다. 군인들도 사람이고, 그 군인도 역시 (쌀이) 한국에서 온 줄 알면 마음으로는 감사해하지 않겠나. 북한 군인도 자기가 굶어 가는데 우리가 보낸 쌀을 먹게 되면 마음으로부터 고마워하겠지요. 그걸 안 먹었을 때 10명 쏠 것도 먹은 사람은 총을 함부로 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끝나자마자 또 연평도에 가셨는데 그곳 상황은 어땠나요.

 

1월 13일 날 연평도에 들어갔어요. 뭐 도움이 될 게 없나 살펴보려고. 참 평온하더라고요.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냐는 듯이. 거기서 몇 사람 만나 이야기도 나눠봤는데, 이제 휴가 마치고 들어가는 군인, 휴가 나오는 군인들은 말을 조심하는 것 같더라구요. 말을 아끼는 것 같고. 휴가를 장기간 나와 있어서 요즘 상황은 잘 모르겠다, 군 기밀이니까 더 이상 모르겠다고. 아주 반듯하고 그런 훌륭한 아들들이 한 명이라도 더 죽게 해선 안 된다. 거기 분향소에 갔었거든요. 이제는 너희들 죽음이 헛되지 않을 꺼다. 나 혼자서 생각했어요. 두 아들의 죽음을 더 이상 내가 헛되게 만들지 않겠다고(눈물). 제가 아들을 둘 키우다보니 더 와 닿았던 거 같아요. 거기서 큰 아이 친구도 만났어요. “어머니, 웬일이십니까?”하더라고요. “너희가 고생하는 구나. 꼭 전쟁 없는 세상 만들어서 너희들이 불안하지 않게 해주겠다. 그러니 힘내라”고 말해줬어요.

 

 

<사진4. 처참하게 포격 맞은 연평도에서 유애경님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