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 북한 이야기

북한 수재민들, 올 겨울 추위 어떻게 날까?

차라의 숲 2010. 11. 19. 21:43

 

도대체 굶주려 죽는다는 게 뭘까요?

 

눈이 퀭하고, 배만 볼록 나온 기아에 삐쩍 마른 제3세계 아이들을 영상으로 혹은 사진으로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때뿐이었습니다.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입맛에 맞는 음식과 맞지 않는 음식을 구분하고, 제 기호를 탐닉했습니다.

 

제게 선(善)함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5분을 못 갔습니다. TV에 나오는 불쌍한 사람들 때문에 어떤 땐 가슴미어지도록 통곡하며 울다가도, 금방 채널이 바뀌어 코미디 프로가 나오면 깔깔 대고 웃었습니다. 가끔 마음을 내서 ARS라도 누르고, 아니면 현금자동입출금기에 가서 계좌이체까지 하는 성의를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그 때뿐입니다. 제 생활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오염된 식수와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에 노출된 채 하루하루를 생존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하고, 저는 여전히 까페라떼를 마실까, 카푸치노를 마실까 고민하는 삶을 삽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그때도 누군가 고통받는 현실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 막 울었을 때였나 봅니다. 울면서 스치던 생각 하나. '이러다 말겠지. 눈물이 마르면 또 나는 내 일상을 살겠지'. 그리고 결론적으로 내렸던 생각 둘. '아아 눈물은 구원이 될 수 없구나'...내가 아무리 저 사람을 위하여 서럽게 울어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에게는 어떤 구원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습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눈물은 그저 자기 양심을 달래는 일일 뿐이라는 걸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을 모른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남의 나라 아이들도 도우려고 하는데, 바로 가까이에 있는 그들을 돕지 않는다는 사실이 정말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더 이상 눈물만 흘려서는 안 되겠다고, 무언가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 열망이 북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던 건데...그런데, 도대체 모르겠는 거에요.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린다는 게 뭔지...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경험을 감히 상상을 못하겠더라구요. 물론 몇 끼 굶어보지 않은 것 아니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뜻에서 한 달 내내 죽만 먹는 캠페인에 참여해본 적도 있지만, 그래서 굶주림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모르겠는 거에요. 

 

좀 고민하다가, 제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고 생각했어요.

'아아 내가 몇 끼 굶어보니까 정말 힘 없어서 못 살겠더라, 내가 이런데 그 사람들은 오죽할까. 내가 내리 죽만 한 달 넘게 먹어봤는데, 다른 건 다 참아도 똑같은 것만 먹으라는 건 정말 못하겠더라. 가끔 밥도 먹고 라면도 먹고, 피자도 먹고, 아주 가끔 스파게티도 먹는 때도 있어야지 어떻게 세 끼를 죽만 먹냐고. 그건 정말 사람할 짓이 못 되더라. 근데 북한 사람들은 죽도 하루 세 끼 못 먹는단다, 그래서야 어디 사람이 산다고 할 수 있겠냐?'

 

철저히 제 중심의 잣대지만 전 이 방법밖에 모르겠더군요.

 

 

식량 지원 끊기자, 친척 찾아 떠나는 수재민들

  

의주군 수진리를 비롯해 비피해가 심했던 룡계리, 룡운리, 대화리 등에서는 현재 식량이 없어 하루 3끼 전부를 고구마로 이어가는 세대가 많다. 홍수 피해 지역에서 제일 힘든 세대는 역시 어린애가 많거나 노인들이 있는 세대이다. 정부에서 수해 초기에는 긴급 식량을 얼마간 지원해주었는데, 지금은 모두 중단된 상태다. 폭우로 하루아침에 집과 모든 재산을 잃은 주민들 중에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지자, 친척이나 부모형제의 도움을 받으려고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살길이 막힌 농민들은 다른 지방에 있는 친척이나 형제들에게 눈치가 보이더라도 어떻게든 얹혀살겠다는 심정으로 집을 떠나가고 있다(하략).

 

좋은벗들, '오늘의 북한소식', 371호(http://j.mp/avbwY3)   

 

 

네, 제가 주절주절 많은 말들을 늘어놓은 건 이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북한 수해 피해가 컸다는 소식은 다들 들으셨죠? 그게 8월이니까 벌써 3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네요. 민간단체에서 밀가루 몇백톤씩 지원하고, 정부에서도 적십자차원에서 쌀 5천톤 지원한다고 하고, 그래서 그걸로 뭔가 한 기분이었다면...그건 착각이라는 것, 그걸 말해주는 소식이어서요.

 

제 경험을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ARS 한 번 누르고 계좌이체 한 번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그 사람들이 제대로 지원을 받았는지, 그들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계속 관심을 보이는 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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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평북, 평양, 대동강변 침수사진들>

 

 

먹을 것이 없어서 친척들을 찾아 떠난다는 소식인데, 어린이들과 노인이 있는 집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네요. 위 사진들을 보니 완전히 물에 잠겼군요. 집들이 정말 무사할리가 없었겠어요. 북한 정부에서도 수재민들을 위해 특별히 식량을 지원했던 모양인데, 10월이 되자 그게 다 끊겼던 모양이에요. 사실 북한에 식량이 없는 거야 하루이틀 일도 아니니, 수재민들에게 구호식량을 조금이라도 지원했다는 게 오히려 놀랍네요.

 

먹을 게 없는 나라에 건설 자재가 뭐 충분하겠습니까? 살림집들이 많이 망가졌으니, 어떻게든 빨리 보수해서 집 잃은 수재민들을 거둬야 할텐데, 자재부족으로 살림집 건설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있군요.

 

서해안 수재민 살림집 건설 늦어져

 

황해남도 서해안 지역의 수해 피해 복구가 자재 부족 등으로 진척이 늦어지고 있다. 옹진군과 배천군, 룡연군 지역에서는 완파되거나 반파된 살림집들을 복구하는 작업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 수재민들의 불안이 높아가자, 군당과 인민위원회 일군들은 자재부족으로 살림집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할 뿐이다. 주민들은 불완전하게나마 벽체와 지붕만 수리하거나 보수하고, 창문과 출입문은 대충 비닐박막으로 막아 가을 찬바람을 막고 있다. 비닐박막조차 구하지 못한 집들은 비닐박막을 대체할 것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하다. 먹을 것이 없어 식량 사정의 압박을 받는 세대들은 집 지을 엄두를 아예 내지 못한다. 그저 땅을 파서 반토굴을 만들어 위에 지붕을 씌워 겨울 준비를 하는 정도이다. 대조적으로 일부 간부들과 잘 사는 사람들은 새로 지은 집에 먼저 들어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좋은벗들, '오늘의 북한소식', 제371호(http://j.mp/9D0zFO)

 

 

당국에서는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고, 올해 유독 빨리 찾아온 추위에 수재민들은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파손된 옛집에서 쓸만한 목재를 건져내 뼈대만 세우고 대충 비닐박막으로 바람을 막는 집도 있고, 비닐박막도 구하기 어려워 아예 땅을 파고 반토굴집을 짓는 원시적인 방법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천막살이하는 북한 수재민 가족들, NEWSIS>

 

이 사진들은 아마 수해가 난 직후에 찍은 사진들인가 봅니다. 반팔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면요. 사진 속 가족들도 아직 천막살이를 못 벗어나고 있을까 걱정입니다. 아이들이 입을 겨울 옷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뭐라도 건져낼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저 살림살이를 보니 뭐가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2002년도였나? 태풍 루사가 강원도를 강타한 때가 있었죠. 그때 강원도 강릉에 수해복구 지원한다고 이틀인가 사흘인가 자원봉사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게 쓰레기로 변해버려서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손대야할지 모르겠더군요. 완전히 흙더미에 파묻혀버린 집도 있었고, 최신식 양옥집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진흙탕에 망신창이가 된 집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열심히 삽질하고, 진흙으로 범벅된 벽을 아무리 빡빡 밀어도 일이 한도 끝도 없더군요. 그래도 우린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생수와 구호물품, 옷가지들을 계속 보내주고, 심지어 자원봉사하러 온 우리들의 밥까지 챙겨주시는 분들도 있었으니, 시스템 면에서 북한과는 천양지차라 할 수 있겠죠. 우리 재난 방지 시스템이나 구호 방식에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요.

 

제가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그저 간단하답니다. 북한 수재민들의 고통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달라는 것...혹시 여기에서 더 마음이 나시는 분들은, 북한에 지원하는 단체들에 후원금을 내셔도 좋구요. 정치적 발언을 좀 할 줄 아시는 분들은, 한국 정부에 제발 인도주의 지원만큼은 정치 문제와 연관시키지 말고, 그냥 조건없이 하라고 요구해주시구요.

 

전 일부 새터민들이 "북한에 쌀이든 뭐든 지원하면 안된다, 다 김정일 배 불리고 저 체제를 존속시키는 거다"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선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쪽에 살면서 얼마나 악에 바치면 그러겠어요. (하지만 논리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에요. 이건 담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듯 ^^;;)

 

하지만 북한에 별로 관심도 없고, 그냥 내 일상에 자족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이라 해도,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 배워야 합니다"라는 명제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북한 주민들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문제는 정부들끼리 만나서 지지고 볶든 협상으로 해결해가고, 주민들의 민생고는 각자 정부가 알아서 하되, 저쪽 정부가 감당하지 못하는 인도주의 사안이 발생했을 땐 이쪽에서 팔걷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통일됐을 때, 그래도 우리가 당신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전 따뜻한 곳에서 배불리 잘 먹는 이율배반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잠시나마 추위에 떨고 있을 북한 수재민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비록 반짝 관심이라도, 다른 분들에게 알려 함께 공유하고, 목소리를 내면 혹시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한 분, 두 분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요. 전 비록 힘이 없지만, 저보다 더 힘있는 목소리를 내실 수 있는 분들의 눈에 띄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올려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 수재민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제가 올린 소식은 좀 우울했지만, 그래도 모두들 즐거운 주말 보내시구요~ 이웃님들 블로그 방문은 일욜에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 다시 인사드릴게요. ^^

 

아직 끝나지 않은 수해

 

큰물피해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수재민들을 위한 국가적 구호는 거의 없는 상태다. 당장 추위를 막을 옷과 따뜻한 음식, 바람 막을 거처가 필요한 수재민들에게 겨울은 공포로 다가온다. 병에 걸려 앓고 있는 수재민들이 많고, 병이 깊어져 숨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도무지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는 식수가 부족하다. 수해로 수도관들이 쓸려 내려가고, 주민용 수도공급체계가 복구되지 않아 물을 틀면 누런 흙탕물이 나온다. 아파트 주민들은 물지게로 인근 강가에 나가 물을 길어먹고 있는 형편이다. 함경남도 함흥시에서는 기업소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을 동원해 수해복구에 나섰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파손된 도로와 교량, 제방, 둑 등을 다시 복구하고 있지만, 삽과 곡괭이로만 공사하는 게 처음부터 무리였다. 파손상태나 규모, 범위 어느 모로 보든 인력이 수동으로 복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시멘트나 목재 등 자재가 부족한 것도 공사 진척이 잘 안 되는 이유이다. 큰물이 쓸고 간 때는 한여름이었지만, 피해 주민들에게 수해는 아직 진행 중이다.

 

좋은벗들, '오늘의 북한소식', 제376호(http://j.mp/cpHle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