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 북한 이야기

영국 간 새터민 학생들이 상위권을 휩쓰는 이유?

차라의 숲 2010. 11. 16. 16:43

얼마전 북한 전문가들의 토론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그 자리에서 나온 얘기가 "영국에 간 새터민이 약 600명 되는데, 새터민 학생들이 학교에서 상위권을 휩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뭐냐니까, "사회적 수용도의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하더군요.

 

북한 사람이 국경을 넘으면 탈북자가 됩니다. 중국에서 좌충우돌 떠돌아다니면 탈북난민이 되기도 하고, 북한이탈주민이 되기도 합니다. 브로커에게 적게는 몇백 만원에서 많게는 몇 천만원까지 건네주고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새터민이 됩니다. 용어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아, 혹자는 계속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하기도 하고, 탈북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당사자들 스스로가 새터민이란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고, 탈북자란 말도 마땅치 않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직 정체성을 구분짓는 용어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남한에 들어온 북한 사람들이 벌써 2만 여명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통일부는 15일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이 지난 11일 2만 명을 넘어섰으며 15일 현재 2만50여 명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주 전체 입국 인원은 80여명이며 50여 명의 탈북자가 탑승한 비행기가 11일 입국한 시점에서 2만 명을 돌파했다는 설명이다. 북한이탈주민은 지난 1999년 입국자 기준 누계 1000명을 넘어섰으며, 2007년 1만 명을 기록한 이래 3년 만에 두 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2927명을 기록한 것에 비해 올해 입국자는 지난달 10일까지 1979명이 입국해 다소 줄어든 추세다. 통일부 관계자는 "중국 내 상황이 어려워진 것과 관계가 있지 않나 본다"며 조심스럽게 원인을 분석했다.


프레시안, "탈북자 2만명 시대…"차별과 편견, '2등 국민' 시각 버려야"

 

 

2만 명이라면, 우리 행정구역으로 치면 한 개 군의 인구에 해당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전 새터민 이야기를 할 때 늘 '얼굴 없는 이웃'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2만 명이라고는 하지만,아직 남한 사람들이 체감하기에는 먼 숫자지요. 그저 식당이나 노래방에서, 기타 오고가는 곳에서 혹시 다른 말투가 들려온다 싶으면, "어디서 오셨어요? 혹시 연변분이세요?"라고 물어보는 정도?

 

이젠 조선족 동포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런 질문도 하지 않겠지만,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은 우리 새터민 분들을 퍽이나 당혹스럽게 했던 질문 중 하나랍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조선족이에요" 혹은 "강원도에서 왔어요"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때가 많다고 해요.

 

왜 그럴까요?

 

다른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끼리 축구 대회를 한 적이 있어요. 새터민 친구들과 서울 중학생 친구들이 무리지어 축구를 하는데, 여러분도 보면 놀라시겠지만 우리 새터민 친구들 정말 축구를 잘 합니다. 북한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게 그냥 우연이 아니라니까요. 

 

키도 그닥 크지 않고, 체격이 좋지도 않은 아이들이 날쌘 몸놀림으로 공을 가지고 놀면서 몇 골씩 넣으니, 우리 서울 촌놈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은근 얕잡아보고 덤볐다가 큰 코 다치자, 우리 서울 촌놈 아이 하나가 2골이나 넣은 새터민 아이에게 다가가 놀랐다는 시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북한에도 축구공 있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먹다짐이 오갔습니다. 남한 아이는 별 말도 안했는데, 갑자기 주먹세례를 퍼붓는 북한 아이가 이상했을 겁니다. 억울하기도 했을테구요. 그걸 보고 있던 어른들도 놀랐으니까요.

 

 

 

 <출처: Tom Peddle, http://j.mp/9DSPWS 북한에도 축구공 있죠? ^^>  

 

 

<사진: Tom Peddle, http://j.mp/aopYGI 함흥에서 만난 아이들이라네요. 해맑은 미소가 정말 사랑스러워요^^>

 

왜 그랬을까요?

 

'북한'이라는 꼬리표는 새터민들이 지고 갈 수밖에 없는 멍에와 같습니다. 김정일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꼴보기 싫지만, 북한 못 산다는 얘기에 비웃는 듯한 시선도 참기 어렵습니다.

 

하나원에서 새터민들을 만나보면, 누구나 가장 먼저 말투를 바꾸고 싶다고 말합니다. 방송국 아나운서가 될 것도 아닌데, 함경북도 무산에서 오셨다는 한 여성분은 볼펜을 입에 물고 매일 짬짬이 서울말투를 따라한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여성분들이 말투를 더 빨리 바꿉니다. 예전에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보다 말투를 더 빨리 바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차별과 낙인을 피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새터민들은 바로 그것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북한...하면 여러분들은 뭐가 먼저 떠오르세요?

 

김정일, 최근엔 김정은? 3대 세습, 독재, 북핵, 정치범수용소, 생체실험...

수해, 식량난, 아사자, 영양실조, 경제난....

 

뭐 하나 긍정적인 게 없죠? 제가 북한 사람이라면, 저같아도 누가 북한에서 왔냐고 물어볼까봐 겁부터 나겠습니다. 내가 어떤 인격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알려주기도 전에, '아아 탈북자', '아 북한'이라고 큰 범주에서 이미 구분되고 마니까요. 그 구분이라는 게, '아 미국 사람~~'이라고 구분되는 것과는 엄청 다른 거니까요.

 

북한은 지지리도 가난하고 못 산다고 생각하는 남한 아이들로선 "축구공 있냐?"고 묻는 게, 그냥 궁금해서 한 말이겠지만, "아무리 우리가 못먹고 못살아도 그렇지, 우리를 뭘로 보고 이 XXX"라고 욱하고 주먹부터 날려버린 북한 친구의 심정도 이젠 이해가 가시겠지요?

 

차별의 시선이란 이런 것 같습니다. 나는 상대에게 별 이유없이 묻는 말도,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에서는 상대를 상처줄 수 있다는 것...말이죠. 그래서 전 차별받는 사람들의 눈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별받는 입장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이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차별이 시정되려면 최소한 그들이 뭘 문제로 느끼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전 영국의 사례가 심상치않게 다가옵니다. 영국에 간 새터민 600명 중에 새터민 학생들이 몇명이고 그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학생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토론회 중간 흘러나온 얘기니까요. 하지만 그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영국에 가면, 아니 다른 어느 나라를 가도, 그 아이들은 새터민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될 거에요. 북한이라는 꼬리표도 없을 거구요. 남한도 잘 모르는 외국인들 사이에 북한 꼬리표를 좀 달고 있다 해도 뭐 큰 차이가 없을 것 같구요.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겪을지언정, 북한 사람이라고-지지리 가난하고 열등한 상징으로서-차별받는 일은 없겠지요. 그래서 그 아이들은 차별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겠죠.

 

우리 사회는 아버지의 소득 수준으로, 출신 지역이 어디냐는 이유로, 집안 배경이 어떠냐는 등 갖가지 이유로 체계적으로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니까, 굳이 북한 출신이라는 딱지 하나가 더 붙는데서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 하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영국 사례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저와 세대주(남편)는 몸이 다 늙어 그냥 거기서 죽어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은데 공부를 못하게 됐어요. 우리 세대주가 납북자라고 우리 애가 대학을 못 가니까...그래서 왔어요"

 

 제 친구 어머님이 들려준 탈북 이유였습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네요. 지금 그 친구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기업의 연구소에 취직했고, 2년 전에는 결혼도 하고 예쁜 아이를 낳아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초반에 그 친구 영어를 좀 도와줬는데, 영어는 우리나라 중학교 1-2학년 수준이었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이 많아서 진도가 쑥쑥 나갔습니다. 전 다만 기초적인 부분을 거들어주었을 뿐인데도, 쑥스럽게도 그 친구와 어머니는 많이 고마워하셨습니다. 자식의 교육과 진로 문제때문에 탈북을 감행했던 이 용감한 부모님은 그래도 희망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오신 거겠죠. 제 친구는 희망을 현실로 만든 성공사례이지만, 아직도 많은 새터민분들이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계시죠.

 

그들의 희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사회...그렇게 갈 수는 없는 걸까요? 물론 남한 사람들의 차별어린 시선을 이겨내는 건 새터민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들에게 무심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차별하는 우리 사회의 통념도 또한 돌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안될까요?

제게 부산 친구도 있고, 광주 친구도 있고, 대구 친구도 있듯이...

그냥 청진 친구도 생겼고, 무산 친구도 있고, 평양 친구도 있고 원산 친구도 생겼다고 말이죠.

 

제 경험상 함경북도 사람들 성격이 괄괄한 게 경상도 분들과 잘 통할 것 같고,

평양 사람들은 새침한 서울 사람들과 좀 잘 통할 것 같은데...

남한이다 북한이다 이렇게 가르지 말고, 그냥 그 지역들 특성으로 이해하고 넘어간다면,

누가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우월감을 느낄 필요도 없이

다른 점은 그냥 상대의 특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럼 새터민들도 좀 더 편안하게 우리에게 '얼굴 있는 이웃'으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나 함주군에서 왔수다"

"어 우리 할아버지는 함흥 사람인데"

 

이렇게 주고받으면 자연스레 소통하게 되지 않을까요?

정착금을 억만금 주지 않아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이웃들이 있는 곳이라면, 다시 이 땅을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자꾸 베풀어주는 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하니,

이 사람들이 받기는 받지만, 기분 좋지 않고 오히려 위축되는 거 아닐까요?

 

아아...감기 몸살로 머리가 아직도 지끈거립니다.

새터민 2만명 시대라는 기사가 일제히 올라오는 걸 보고, 뭐라도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횡설수설 하고 지나가는 것 같네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그냥 여기까지만 주절거리렵니다.

 

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

이번 감기 좀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