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소리

[책 리뷰] 천재의 스펙도 안 통하는 불공정 사회

차라의 숲 2010. 11. 10. 14:35

 

암울하고 비전 없는 사회,

일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그 나물에 그 밥인 사람들이 정권을 제 멋대로 휘두르고,

아무리 능력있고 재능이 뛰어나도, 흔한 말로 빽(?)이 없고 연줄이 없으면 도저히 제 뜻을 펼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회...1등을 해도, 아버지가 누구냐, 집안이 어떠냐로 재단되는 사회...

 

아무리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라 해도, 이처럼 총체적인 난국 속에서는 살 길이 참 막막했던 모양입니다. 오늘은 고려의 폭군으로 등극한 의종 시대 말기에 태어나 무신정권의 불안한 정국 시기를 살다 간 한 천재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9살에 신동 소리를 들었습니다. 글자 하나만 던져주면, 즉석에서 유려한 시(詩)를 읊어냈다고 합니다. 글 꽤나 안다는 어른들을 놀래킬만큼 명문이었다고 합니다.

 

종이 위의 기나긴 길에는 모학사(붓의 명칭)가 줄지어가고

술잔 속에는 항상 국선생(술)이 들어있네 

紙路長行毛學士 盃心常在麴先生

그가 11살에 지었다는 시입니다. 

 

 

14살때는 그 나라에서 최고학부라는 사립명문학교 '문헌공도'에 입학했고, 해마다 시를 짓는 시험에서 1등을 뺏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학벌 되고, 머리 똑똑하고, 말빨 안 뒤지고, 사교성도 있는 전도유망한 것처럼 보이는 그 천재는, 그러나 의외로 전혀 잘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당대 권력과 연줄이 없으면 말단 관직 자리 얻기도 힘든 그런 '불공정'이 판치는 시대였으니까요.

 

10대 때부터 술을 좋아했던 그는 시대의 설움을 술로 풀어냅니다.  아버지가 과거시험을 봐서 가문을 일으키라고 그렇게 염불을 외는데도,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느라 과거공부는 등한시합니다. 과거시험에 합격해봤자,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제 생각과 신념대로 뜻을 펼칠 기회도 없을 것을 알았던 거죠. 그래도 아버지 성화에 시험은 보는데, 천재 소리가 무색하게 무려 3번이나 미끄러집니다. 22살에 비로소 말단 공무원 시험 하나에 합격하고, 23살에 하급 관직을 얻습니다만, 자의식이 꽤나 높았던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와버리려고 합니다. 아버지 만류에 겨우 붙어있긴 했지만, 그것도 오래 못갔죠.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아부와 아첨이 횡행하고, 혼탁하기만 한 세상,

힘없는 백성들을 수탈하고, 흥청망청 놀고 사치하느라 국고는 텅텅 비어가고,

금나라와 요나라의 눈치나 보며 굽신거리는 엉망진창 외교,

군부에서 권력을 잡아 지식인들이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던 시대에,

이 천재의 울분은 깊어만 갑니다.

 

그나마 그를 달래준 것은 한 잔의 술과 시였습니다.

 

아버지마저 24세 되던 해 돌아가시자, 그의 방랑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술을 벗삼아 산에 들어가버리거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닙니다.

나라꼴이 엉망이니 뛰어난 재능이 있던 그도, 그렇게 갈 길을 못 찾고 방황합니다.

 

직장을 구하려면 "눈을 낮추면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방황했던 걸까요? ^^;;

아니오. 그의 아버지가 무수히 조언해주었을 겁니다.

일단 어느 직장이든 들어가라고. 버티라고. 그러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그런데도 그 자리를 못 견뎌한 그가 정말 어리석었던 걸까요?

 

24살, 그의 미래를 염려하고 걱정해주던 아버지를 잃고, 그는 개경에 있는 천마산에 들어갑니다. 그는 책 속에서, 과거의 역사에서, 시대의 희망을 찾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25살에 '구삼국사(舊三國史)'라는 책을 읽고, 26살에 훗날 우리 문학사상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대서사시를 짓습니다. 바로 '동명왕편'입니다.

 

누군지 눈치 채셨나요? 네...그는 백운거사로 널리 알려진 이규보(李奎報, 1168~1241)입니다.  

술, 거문고, 시를 좋아해 '삼혹호(三酷好)선생'으로 불리기도 했다죠. 국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대서사시를 지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지금처럼 출판해서 인세를 받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평단이 있어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그는 여전히 관직과 별 인연이 없이 그저 술과 시를 벗삼아 세상을 한탄하며 세월을 보냈던가 봅니다.   

 

그의 나이 서른이 넘어가면서, 점점 초조해졌던 건가요? 32살 어느 봄날, 당대 최고의 실세인 최충헌 집에 불려갔다가 시 한 편 잘 지어 말단관직을 얻습니다. 그러나 워낙 박봉에 일 안하는 상사와 태만한 부하, 비방중상하는 동료들 사이에 얼마 못 버티고 결국 떨려납니다. 그리고 허송세월 7-8년,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은 나이 40세. 최충헌이 '모정'이라는 별장을 지었는데 당대 뛰어난 문장가들을 불러 '모정기'를 짓도록 했답니다. 거기서 이규보의 글이 뽑혀 별장 현판에 걸리고, 이규보는 최충헌의 눈에 띄어 하위직이지만 8품 관직을 얻습니다.

 

그러다 최충헌의 아들 최우가 주최한 연회에서 고관대작들 앞에서 이인로가 불러준 40운에 맞춰 즉석에서 시를 쓰게 되는데, 이때 최우의 눈에 듭니다. 최우에게 발탁된 뒤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합니다. 말단관직 8품에 머물렀던 그가 7품으로 올라서고, 그의 나이 48세에 6품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52세에 부하의 무고로 정직당하고, 좌천됩니다. 그의 정치적 신념은 권력을 보전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번번이 방해만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최우정권이 그에게 요구한 건 남들보다 빼어난 문장이었지, 정의감이 아니었으니까요. 보신주의에 빠진 그는 다시 최우정권에 발을 들인 뒤 10년 여 동안 관직생활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 뒤에도 귀양을 가는 등 그다지 평탄한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말년에는 몽골의 침입으로 장장 30년 전쟁이 시작되면서 강화도로 피난가는 등 국가적 재난까지 들이닥쳐 더 힘겹게 보냈습니다.

 

최씨 정권의 환심을 사는 글로 최고 관직에까지 오른 그이지만, 몽골의 침략으로 전 국토가 유린되고 백성들이 더욱 피폐해져가는 상황에서 어찌 마음이 편했을까요? 말년에 몇 번이나 사직서를 올리지만 반려되다가 그의 나이 74세에 생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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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네이버 백과사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이규보 묘>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워 방황하다가, 그래도 가족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겠기에 자존심을 버리고 출세길을 좇아 재능을 소비했던 그이지만,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그는 권력에 아양을 떨었을지언정 피폐한 백성들을 모른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동시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동명왕편을 지어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聖人)의 나라라는 것을 천하에 알리려고"했고, 그래서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부조리한 사회에 어떻게든 빌붙어 살아보려는 소심한 지식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없는 사실을 꾸며내고 아닌 것을 맞다 하고, 권력에 무조건 네네 아첨하며,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그런 양심없는 지식인은 아니었습니다.

 

이규보의 생애를 들여다보며,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조차 어쩌지 못했던 사회 구조를 보게 됩니다.

 

능력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건 신화일 뿐이고...

성별, 계급, 인종, 민족, 혈연, 자본 등으로 이미 견고하게 차별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재능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음지가 아니라 양지에서 살고 싶다면, 하는 수없이 가진 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 청년실업문제를 "눈높이를 낮추지 않아서" 생기는 개인의 문제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미 차별이 공고해져 양극화가 심한 사회에서,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 문제로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건, 철저히 가진 자들의 시선이라는 것, 그리고 그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것...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더군요. 물론 고려 무신정권 시대를 요즘 시대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요...

 

오늘 대구에서 한 여대생이 학자금 700만원을 못 갚아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왔다고 하는데, 나이 어린 친구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그녀의 명복을 빕니다.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꽃피우지 못하고 스러져가고 있는, 이 비극의 시대를 살고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심심한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사의 천재들'이란 책의 이규보 편을 살펴보았습니다.

 

 

 

분위기를 좀 바꿔서, 제가 큰 소리로 깔깔대며 웃었던 이규보의 시 한편 소개하고 싶습니다. 더 보고 싶으신 분은 '더보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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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들 삼백(三百)이 술을 마시다'입니다. 

  

네가 어린 나이에 벌써 술을 마시니

앞으로 창자가 녹을까 두렵구나

네 아비의 늘 취하는 버릇 배우지 마라

한평생 남들이 미치광이라 한단다

한평생 몸 망친 것이 오로지 술인데

너조차 좋아할 건 또 무엇이랴

삼백이라 명명한 걸 이제야 뉘우치노니

아무래도 날로 삼백 잔씩 마실까 두렵구나

<동국이상국집> 제8권 고율시 

 

제아무리 한평생 술을 놓지 않았던

술고래 아버지라지만, 제 자식까지 술 마시는 것은 걱정이 되었나봅니다.

애틋한 부정(父精)이 느껴지지 않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