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소리

[책리뷰] '폭군의 몰락'에는 다 이유가 있다

차라의 숲 2010. 11. 4. 20:51

 

오늘 참 황당한 기사들을 많이 봤습니다.

서대문구에서는 G20 행사를 위해 음식물쓰레기를 내지 말라고 했다고 하고,

청사초롱 든 쥐-일명 쥐벽서 사건-를 그렸다는 이유로 한 대학강사는 구속영장이 신청됐다고 하고,

40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해갔던 한 젊은이를 기리기 위한,

시사만화가들의 만평 작품들이 강제철거됐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잠시 갈 길 잃고 두리번두리번 거리게 됩니다.

내가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 게 맞는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거 맞나?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위정자들은 두려움이 많은 법입니다. 누가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덤벼드는 일은 그래서 생기는 가 봅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합니다. 정말 쪽팔리는 일입니다. 그렇게 국격, 국격 따지시는 분들이니,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일들이 국제사회에 퍼져나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손님맞는다고 음식물쓰레기 내지 말라는 건 유교문화때문이라 억지로 이해해본다고 쳐도, 행사 포스터에 쥐 좀 그렸기로서니 인신구속을 하려고 한다는 게 이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갑니까? 시사만평을 그리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만평을 그려서 전시를 좀 했기로서니 그걸 또 강제철거하는 이유는 뭐랍니까?

 

 

   

 

 

 <철거된 만평들, 출처: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708>

 

네 알겠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이 정부에 있어 확실히 '아웃 오브 안중'인가봅니다.

자기들 임기가 얼마 남아있는지 계산은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이 시대에 '분노'를 일으키는 어떤 이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폭군의 몰락'이라는 책입니다.

 

 

 

 

"...운 나쁘게 폭군이라도 들어서면 멀쩡했던 나라는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현명한 신하들을 풀베듯 없애고, 백성들을 보리밟기 하듯이 짓뭉개고, 국고는 텅텅 비고, 외국과는 손발 안 맞는 외교전을 펼쳤다. 그래서 자기 신세를 망치는 것은 물론 체제 붕괴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많은 신하들과 백성이 버젓이 눈뜨고 버티고 있는데, 고작 왕 하나 바뀌었다고 나라가 그 지경이 될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왕의 힘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pp.307) 

 

솔직히 처음 이 책을 골랐을 땐, 김정일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제 주요 관심사 중 하나가 통일문제이고, 북한 주민들이 식량난으로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소리에 가슴아파하던 때였으므로, 북한이 먼저 연상됐던 거죠. 뭔가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통일을 위한 단서라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지난 3년 가까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어떻게 사람 하나 바뀌었다고 세상이 이럴 수가..."였습니다. 어렵게 일군 민주주의의 가치가 버젓이 두 눈 뜬 상태에서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을 보리밟기 하듯 짓뭉개고, 국고는 텅텅 비고, 외국과는 손발 안맞는 외교전을 펼치는" 것은 먼 옛날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패하거나 무능하거나 나라를 잘못 다스린 왕들이 걸었던 길을 조명해보면, 신기할 정도로 닮은 모습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과신, 빈약한 현실 인식, 도움이 안 되는 측근들, 현실도피의 자화자찬, 뻔히 보이는 위협 등등. 그래서 이들을 보다 보면 납득하게 된다. '아, 이러니까 그 나라, 그 왕은 망할 수밖에 없었구나'라고. (pp.35)

 

저자는 나쁜 왕이 저지르기 쉬운 악덕을 '사치, 잔인함, 자기 과신, 고집, 집착, 소수만을 위한 정치, 광기, 의심, 불신, 무능함, 편애, 맹목, 변덕..'등을 꼽습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만을 꼽으라면, 하나는 '편애'이고, 다른 하나는 '자만심'이라고 말합니다.

 

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단 공정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특정한 인재의 재능이 오로지 왕에게만 보인다면, 그건 본인의 눈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어리석은 임금은 제 눈의 두터운 안경을 발견하지 못하곤 한다. 자신이 죽거나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아마 미래의 나쁜 지도자도 그러하리라.(pp.49)

 

올해 8.15 경축사에서 정말 뜬금없이 '공정한 사회'라는 깃발이 등장했는데요, 정말 몰랐던 걸까요? 이 정부 태생이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을요. '강부자' 와 '고소영'이야말로 공정하지 못한 대표 사례가 아닐런지요. 최근엔 아주 유명한(?), 전직 외교부 장관 딸의 특채 사건이 한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했죠. 공정한 사회를 내걸었으면서도 자기가 믿는 사람들만 포진시키는 것은, 바로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가장 쓸데없는 지도자가 있다면 처절하게 무능한 주제에 자의식은 하늘을 찔러 위대한 임금이 되고 싶어하는 왕들일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왕으로 남고자 했고, 이를 위해 앞뒤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국력을 쏟아부었다. 무모한 전쟁을 벌이거나, 쓸데없이 화려한 행사를 열었고, 지나친 토목공사 등이 줄을 이었다. 그 결과 나라는 거덜나고 백성들은 죽어났다. 그리고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야심가들은 반란을 일으켰다.(pp.65)

 

어쩜 구구절절히 딱 맞아떨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아...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불현듯 제가 이 저자분을 괴롭게 만드는 게 아닐지, 순간 자기검열에 들어가게 되는군요. 이것을 해석하는 것은 제 몫입니다. 저자분은 그저 역사속의 폭군들을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걸 혼동해서 이 저자분을 귀찮게 하시는 분이 없었으면 합니다. 특히 관청에 계시는 분들이요~(물론 제 블로그가 인기가 없는 게 천만다행입니다.)

 

아무리 안 알려진 블로그라지만, 아무래도 주춤하게 되는군요.(저 소심합니다. ^^;;) 그래서 여기까지만 말씀드릴랍니다. 

 

이 책에 흥미가 좀 생기셨나요? 쉽게 술술 읽히는데다, 재밌기까지 합니다. 역사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또는 좋은 지도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반면교사로 삼을겸 꼭 찾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폭군의 통치가 영원히 계속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철권통치의 벽이 오래되고 강력할수록 더욱 많은 반발을 초래했고, 그러다가 체제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곤 했으니까. 이런 파멸은 모래 위에 세운 높은 누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왕들은, 어쩌면 근래의 위정자들마저도 곧잘 자신들의 권위가 타고난 것이며 흔들림 없이 영원하고 존중받으리라고 착각하곤 했다....하지만 만약 그 왕이 고통과 시련만을 내린다면 누구도 그 왕의 백성으로 남으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이 왕을 버리게 된다...."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동시에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폭군의 몰락이다. (pp.308-309)

 

'폭군의 몰락'에는 고구려 모본왕, 백제 개로왕, 고려 의종, 고려 공민왕, 조선 연산군과 광해군 등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행보와 몰락 속에서 이 시대의 교훈을 이끌어내는 건 바로 우리 몫이겠지요. 폭군의 몰락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요.

 

아, 이건 보너스~

 

"왕을 바꾸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어처구니 없는 토목공사, 잘못된 인사정책, 권력의 수족이 된 법률....

한국사의 왕들, 과연 누가 진정한 폭군인가?

 

이 책의 카피입니다. "왕을 바꾸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 죽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