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소리

[책 리뷰] 고려시대 성균관 유생의 사랑, 이생규장전

차라의 숲 2010. 10. 29. 18:15

요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 4인방에 몸살 앓는 분들이 많으시죠? 원작인 정은궐 작가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 그 후속편인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의 청춘 성장 드라마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는데, 저는 다소 생뚱맞지만 고려시대 성균관 유생이 떠오르더군요.

 

성균관은 원래 고려시대 국자감을 충렬왕때 성균감으로 개칭했다가 고려말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성균관으로 이름이 정착됐다더군요. 고려의 국립대학이니만큼 수도 개경에 있었구요, 지금은 북한 개성에 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고려 성균관입니다. 성균관에는 천년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지요? 정말 고즈넉하고 평온해보이네요. 공부가 절로 됐을 것 같은데요? ^^ <사진 출처: http://sunyoudo.blog.me/60048387981>

 

이 성균관에 이생(李生)이라는 나이 열여덟의 꽃다운 청춘이 수학하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말끔하고 재주가 비범한데다 학문에 뜻이 있어" 개경에 소문이 자자했던 잘 나가는 도련님이었습니다. 그런데 피끓는 청춘이니 아리따운 여인의 향기를 그냥 지나칠 수야 있겠습니까?

 

마침 선죽동에 살던 최랑이라는 열여섯 귀족 처녀와 조우하게 됩니다. 최랑 아씨는 "태도가 아름답고 수놓는 데 익숙하며 시문에 능통하였다"고 하네요.  

 

 

여기가 그 유명한 선죽교입니다. 선죽동에 있지요. <사진 출처: http://sunyoudo.blog.me/60048387981> 이 분 블로그에 이쁜 사진들이 많아 넙죽 가져다 씁니다. ^^

 

 

풍류로울손 이총각, 아름다워라 최처녀

그 재주와 그 얼굴 그 누가 찬탄치 아니하리. 

 

동네 사람들이 이런 시를 지어 두 사람을 찬미하였다니, 요즘 말로 고려의 대표 엄친아, 엄친딸이었던가봐요.

그런데 학문에만 뜻을 둔 꼿꼿한 이도령과 조신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최처녀가 첫눈에 그만 활활 불이 붙고 맙니다. 누가 먼저 꼬셨을까요?

 

저기 가는 저 총각은 어느 집 도련님인고

초록빛 긴 소매로 수양가지 스쳐가네

이 몸이 화하여 대청 안의 제비가 된다면

낮은 주렴 차고 나서 긴 담 위에 오르련다.

 

아니 집안에서 얌전히 수틀이나 잡고 있던 아가씨가

지나가던 잘생긴 총각을 보고 마음을 뺏겨

제비가 되어 담장 밖으로 날아가 얼굴이나 보고싶다고 대놓고 꼬리를 치는군요.

 

아무리 대쪽같다지만, 이 시를 들은 이도령 마음이 당연 싱숭생숭해지지 않겠어요?

 

'나도 그대에게 마음은 있으나, 우리가 서로 자유로이 만나지 못할 처지이니 그저 꿈속에서나 만나 운우지정을 나눠봅시다. 그래도 이 허한 마음을 어찌 달랠까마는...' 대략 이런 투의 답문을 기와 쪼가리에 매달아 담장안으로 넘겨보냅니다. 이 답문으로 저쪽도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최랑 아씨, 더 적극적으로 나옵니다. 복숭아 가지를 길게 늘어뜨려 이도령을 급기야 자기 별당 담장 안으로 넘어오게 합니다. 훌쩍 월담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리 이도령 보기보다 소심남입니다.

  

이 다음에 어쩌다가 봄 소식이 누설된다면 무정한 비바람에 더욱 가련하리라.

 

네~네~ 님을 만난 건 봄 소식이지만, 이게 소문이라도 나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두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두 가문에도 득될게 없겠지요. 조선시대로 치면 가문에 먹칠을 하게 되는 거니까요.

 

이 소리에 우리 최랑 소녀, 나긋나긋함을 버리고 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이 일에 대하여 마음이 태연한데 하물며 대장부의 의기로 그런 염려까지 하겠나이까? 나중에 만일 규중의 비밀이 누설되어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는다 하더라도 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

 

브라보~ ^^

저 이 대목에서 감동 먹었습니다. 사내 대장부는 뒤꽁무니를 빼려는데, 우리 여장부께서는 단호하게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으니 그대는 따라오기만 하라"고 주도권을 잡는군요. 고려 시대에 이런 여장부가 있었다니, 정말 놀랍고 신선한 충격입니다.

 

그리곤 우리의 최랑 아씨, 하녀를 시켜 술과 안주를 내오게 하고는 이도령을 이끌어 몇날며칠 집에 보내지 않고 운우지정을 나눕니다. 참 대담한 아가씨입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한밤중에 만나 새벽까지 사랑을 나누다가 헤어지는 생활을 계속 합니다. 자연히 이도령집에서 먼저 눈치를 채지요. 아버지는 이도령이 어느날부터 새벽이슬을 밟고 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공부에 매진하라며 울진(지금의 울산)으로 멀리 쫓아버립니다. 이도령이 말도 없이 쫓겨난 사실을 뒤늦게 들은 최랑소녀, 급기야 몸져 눕습니다. 금지옥엽 딸내미가 끙끙 앓아눕자 애달픈건 그 부모입니다. 딸아이의 연애행각을 눈치챈 부모님은 귀족집 체면 불구하고, 딸 가진 죄인으로다가 먼저 굽신거리며 별볼일없는 이도령댁에 혼처를 넣습니다. 아들 가진 부모는 이럴 때 참 당당한 것 같습니다. 자기 아들은 앞으로 과거에 급제하면 출세길이 어떻게 열릴지 모르니, 급하게 혼처를 정하지 않겠다고 거절합니다. 딸부모는 속이야 쓰렸겠지만, 몇 번이고 설득을 계속합니다.

 

결국 결혼에 필요한 모든 예물과 돈을 전부 여자집에서 지불하는 것으로 하고 어렵게 혼례가 성사됩니다. 네, 정말 무섭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아들 유세가 보통이 아니었군요. ^^;;

 

어렵게 다시 만난 이 두 사람, 부부연을 맺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홍건적의 난을 만나고 마는군요. 이도령 아니 이서방은 몸을 피해 목숨을 구했으나, 최랑은 그만 정절을 위협받아 그 자리에서 죽고맙니다. 그리고 끝인가요? 아닙니다. 조금 더 있습니다. 그 뒷이야기는 천녀유혼 삘의 '환타지'영역으로 넘어가니, 직접 확인해보시면 좋겠네요.

 

지금까지 고려 성균관유생 이생의 로맨스였습니다.

 

이게 뭐냐구요?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많겠지요?

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이생규장전입니다.

김시습 조상님께서 쓰신 소설이지요?

 

우리말로 쉽게 풀어써진 금오신화를 보면

정말 재밌는 구석이 참 많습니다.

나오는 여성들마다 어찌나 다들 대담하신지...^^

 

학교때 최초의 한문소설이라는 것만

죽어라 외웠지,

실제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가

최근에 읽어보니 정말 재밌더라구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여러분들도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오늘은 여기까지 소개해드리구요,

다음 시간에 또 다른 내용으로 찾아뵐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