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소리

[책리뷰] 사랑하는 아들에게 "입대하라" 권한 아버지, '남자삼대교류사'

차라의 숲 2010. 11. 26. 21:10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시국이 뒤숭숭합니다. 우왕좌왕한 국방부, 그리고 아무도 사과하지도 책임 지지 않는 지도부에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어야 하느냐, 이 참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전쟁불사론'과 이럴때일수록 적극적으로 평화를 관리해야 한다는 '평화론', 그 외 여러 의견들이 다양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때론 지나친 흥분 상태에서 험악한 말로, 때론 차분하고 냉정한 어조로...그러나 공통적인 심사는 아마 '답답함'일 것입니다.

 

전쟁불사론을 외치는 분들이나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분들이나, 이번 사건을 겪고, 아마 한번쯤은 무력감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요. 물론 저 놈들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감정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실제 전쟁이 났을 때 가장 먼저 누가 피해를 입게될까요? 전면전이 아닌 이상,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들이 될 것입니다.

 

 

1. 군인들이 누구입니까? 

 

 

네, 우리 아들들입니다. 우리 동생들이고, 형들, 오빠들이고, 선배, 후배들이고,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귀한 인재들입니다. 당사자들이 아닌 이상, 무턱대고 전쟁불사론을 외치는 건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전략차원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압도적 무력시위로 상대 기를 팍 죽이는, 이른바 '억제력'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더 철저히 따져봐야합니다. 그런 것을 다 떠나 그냥 감정적으로, "저 놈들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하고, 이명박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하기라도 하면 "지금 북한 편드는 거냐?"며 이분법으로 사고하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가치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가 당했으니 너희도 맛 좀 보라는 통쾌한 복수심? 그 복수심을 위해 새로운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희생되어도 좋다는 논리를, 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북한 정권을 이참에 아예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북한 주민들을 해방시키는 해방전쟁을 벌이자고 하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명분은 충분할 겁니다.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아도, 저쪽에선 분명히 곧 다시 도발을 해올테니까, 그참에 확 밀고 올라가는 방법도 있겠지요. 3일만 참으면 된다니, 우리쪽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좀 있더라도 감수해야겠지요. 강남 땅값, 아파트값 떨어지고, 주식시장 붕괴되더라도 무슨 대수겠습니까? 3일만 참으면 모든 게 다시 원상복귀될텐데요. 삼성 반도체공장이 폭격당하면 이건 좀 타격이 있겠네요. 공장 재건하는데 시간 좀 걸릴테니까요. 그래도 통일의 위업을 이루겠다는데, 그게 평화통일이 아니라서 헌법에 위배되기는 하겠지만, 인권침해로 고통받고, 굶어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하루빨리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전쟁인데 정상참작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쟁에서 또 다시 무고한 북한 주민들이 희생되겠지만, 그 후손들은 평화롭고 경제적으로 풍요한 민주사회에서 살게 해주겠다는데 이해해주지 않을까요?

 

제가 좀 비틀어서 말하긴 했지만, 꼭 비꼬는 심정으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정말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빨리 끝내고, 우리 민족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불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신다면, 전 그 의견을 존중합니다.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2. 아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습니까?

 

 

다만 묻고 싶습니다. 위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당신은 군대로 달려나가 총을 드시겠습니까? 당신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아들아, 어서 빨리 입대해 조국을 해방시켜라"라며 등떠밀 자신이 있으신가요? 이 정부는 어떤가요? 대통령부터 병역면제에 주요 요직에는 병역면제 아닌 사람을 더 찾기가 어렵습니다. 군에 자기만 안 갔다왔을까요? 아들이 있다면 당연히 그 아들들도 안 갔을 겁니다. 손자가 있다면 그 손자도 당연히 안갔을 것이고, 안 갈 겁니다. 안봐도 뻔한 사실 아니겠어요? 그런 그들이 계속 말로만 "철저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진짜 응징하라고 등을 떠밀어야 할지, 계속 대북강경정책을 고수하겠다는 그 불굴의 의지에 박수를 쳐줘야 할지, 국민들을 안보불안에 빠뜨리는 것에 화를 내야할지...답이 안 나옵니다.

 

이들에게는 민족의 이익이나 국익,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할 가치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보수세력에게까지 얻어터지자, 당장 하루에도 몇 번씩 말바꾸기를 해서라도 어떻게 하면 지지층을 이탈시키지 않을까 이 머리밖에 안쓰는 것 같습니다. 비핵개방 3000을 얘기했으면, 그 목표에 따른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안 보입니다. 그냥 계속 북한에 얻어맞으면서, 얻어맞을 때마다 유리하게 쓸 수 있었을 카드들을 하나, 둘 내버렸을 뿐입니다. 전쟁기념관에서 비장하게 연설하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이젠 어디서 연설할 건지, 새롭게 다시 데뷔할 극적인 무대 장소는 물색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자꾸 남탓만 합니다. 아니 집권한지가 벌써 3년이 다 되가는데 아직도 남탓만 한답니까? 3년동안 이 정부는 허수아비였습니까? 햇볕정책때문에 10년간 군사기강이 흐트러졌다고 판단내렸다면, 국방비가 낭비되는 곳은 없는지, 더 투자해야할 부분은 무엇이고, 어떤 곳을 새로 손봐야할지 더 철저하게 대응책을 마련했어야죠. 전 군사전문가가 아니라 세세하게 말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남탓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은 저같은 무지렁이도 분명히 알겠습니다.

 

 

3. 아들에게 "입대해라"고 했던 아버지

 

여기서 저는 자식에게 입대를 권했던 한 아버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들 윤구의 이야기 

 

청천벽력같았다. 현역으로 입대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학부를 다녔고, 기회가 되면 나라를 위한 일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 경영학 박사까지 받아서 왔는데 사병으로 입대하라니...내가 무엇때문에 이 고생을 했을까. 이런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아버지가 입대하라고 했다. '지금은 괴롭겠지만 분명히 얻는 게 있을 거다. 그게 이후의 네 삶에 도움이 될 거다'라는 말씀이었다. 당시에는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왜 이런 나라에서 태어났을까 생각했을 정도니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5월 어느날, 논산훈련소에 들어갔다. 훈련소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웠다. 열살 남짓 어린 친구들에게 태어나서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욕설을 듣는 상황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중략)...자대 배치 받고 100일 휴가를 나왔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고, 아버지는 지난 6주간 나를 생각하며 쓰신 일기 한 권을 건네주었다. 

 

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때 내 눈에서는 평생 흘릴법한 눈물이 쏟아졌다. 평소에 감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던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군대와 훈련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가 아들이 겪었을 분노와 울분을 생각하면서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절절히 드러났다. 아버지의 사랑이 이런 거구나. 아버지, 아버지...

 

박유상, '남자삼대교류사', pp145-147 발췌 

 

 

이 아버지는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대체복무를 하기로 했던 아들에게 28살 늦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입대하라고 권했습니다. 마침 신혼이었던 아들부부에게 첫 임신 소식이 있을 때였습니다. 그 아버지 역시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그 이듬해에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청소년 시절 늑막염과 신장염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했기 때문에, 남들은 몸이 아파 돈이라도 써서 피했을텐데 말이죠. 아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부모님에게 그는 이렇게 설득합니다.

 

 

 아버지 윤여준의 이야기

 

"아버지, 제 몸의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한 저는 어떤 일도 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오히려 군대에 가면 제 몸이 나았는지, 아직도 온전치 못한 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훈련을 받다 버티지 못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치료를 받으면 될 것이고, 군대 생활을 이겨낸다면 제 몸이 회복되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니 이후에 저는 어떤 일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군대에 간다고 죽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니 군대는 제 장래가 달린 문제입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죽은 것이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입대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떠나는 날까지 눈물 바람을 했다.

 

훈련소에서 고생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매로 군대를 만든다는 모범 중대에 배치되는 바람에 평생 잊히지 않는 경험을 했다. 때려서라도 군인을 만들겠다는 모토에 따라 걸핏하면 매질과 욕설을 했다. 탈영하는 사람의 심정도 이해가 됐다.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사람을 왜 이렇게 들볶는지 가만히 생각했다. 전쟁을 겪은지 얼마 안 된데다, 휴전 상태였다. 휴전 상태라는 건 언제든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강한 군대를 만들려면 혹독한 훈련 외에 도리가 없겠구나 싶었다. 그 후에는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훈련과 기합을 받기 시작했다.

 

박유상, '남자삼대교류사', pp.82-84

 

 

'남자삼대교류사', 이 책은 조선 시대 소론의 영수로 불리는 명재 윤증의 후손 윤석오와 그의 아들 윤여준, 그리고 손자인 윤구와 윤찬 등 삼대에 걸쳐 이어진 정신 유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8살 아들에게 입대를 권했고 그 자신 역시 자원입대했던 아버지는, 원로 정치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현 평화재단 교육원 원장)입니다.

 

이 책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여러분들에게 군대 이야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불법병역면제가 판치는 마당에 합법적으로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었을텐데도, 이분들은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했습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이분들은 일부 사회인사들이 사사로운 정치적 이해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대책없이 전쟁불사론을 외치는 것에 반대하실 것 같습니다. 실제 저는 윤여준 전 장관님의 강연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분은 오히려 우리 민족과 국가의 이익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살피고, 현 사건에 대한 대책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워나가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것이 옳은 길이라 믿습니다.

 

 


남자 삼대 교류사

저자
박유상 지음
출판사
메디치미디어 | 2010-10-2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물질이 아니라 정신을 남겨라400년을 이어온 윤씨 가문의 정신적...
가격비교

 

 

책 소개를 잠깐 더 해드리면, 이 책은 아버지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가르침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전범을 보여주는 자녀교육지침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버지 당신들부터 늘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엄하며, 없는 사람, 차별받는 사람, 소외된 사람들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민족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이 사회의 책임있는 민주 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쉽고 재밌게 읽히면서, 동시에 작은 깨달음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부모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물론 일반 서민의 정서와는 좀 안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뼈대있는 가문의 한국식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연상하시면 더 이해가 쉬우실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런 평가가 마뜩치않을 수도 있지만요.

 

사실 윤여준 전 장관님 하면, 오랫동안 한나라당의 책사라 불리셨던 분이라 말이 안통하는 보수일 것이라는 섣부른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뵙고 몇번 말씀을 듣고보니 누구보다 겸손하고 합리적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으신 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가볍게 술술 읽히는 책이니 부담갖지 말고 한 번 읽어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음...얘기가 길어졌네요. 제 주장은 이렇습니다. 전쟁불사론을 외치려면 최소한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질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언제까지 당하라는 말이냐. 저 무지막지한 놈들 혼내주자는 말도 못하느냐."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얼마든지 북한 욕도 하고, 우리 정부 욕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 정책을 끌고 가는 사람들은 그래선 안됩니다. 속으로 북한 욕을 몇천번 하고 분노가 끓어오르더라도, 냉철하게 우리 국익과 민족의 이익을 따져봐야 합니다.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전쟁게임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설혹 지지층의 이탈이 예상되더라도, 그것만이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길이라면 과감하게 정책전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않고, 만약 강경책만이 해법이라고 믿는다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부터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슬그머니 병역면제받은 아들과 손자들, 친척들을 지금이라도 과감히 군에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100% 확실한 승리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또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을 전쟁 피해에 대해서도 이제부터라도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거면, 닥치고 평화적 관리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