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소리

[책 리뷰] 리얼리즘 문학의 진수, 강경애 소설

차라의 숲 2010. 10. 26. 19:09

 

 

 

강경애 소설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밝고 천진난만한 인물들이 엮어내는 삶의 역경과 극복이 아니라,

지지리도 힘이 없고, 약하고 더럽고 비천한 인물들이

'소박한 심성' 그 하나로,

현실의 부조리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오는 처절함에 대한 감동입니다.

 

강경애의 소설에는

'인간문제', '지하촌', '소곰' 등이 가장 널리 알려져있지만,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은 것은,

'산남(山男 )'이라는 단편소설입니다.

 

화자인 여성은

5년 동안 못 뵌 칠순의 어머니가 곧 운명하실지도 모른다는 전보를 받고,

간도에서 고향까지 먼 여정을 가슴 졸이며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어머니를 그리는 그의 애틋한 마음은,

고향에 가까워올수록

자꾸 초조해집니다.

 

기차를 몇 번 갈아타고,

드디어 S역에 도착한 그가

마을까지 가는 버스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다가,

천만다행 버스를 잡아탑니다.

 

때마침 퍼붓는 여름 장마 폭우 때문에

그 날 안으로 집에 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합니다.

 

 

 

 

해지기 전에,

더 물이 불어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운전사나 승객 모두 잔뜩 긴장한 채 몸을 싣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벽 끝에서 운나쁘게

버스가 굴러떨어질뻔 하다가

행인지 불행인지 그만 진흙탕속에 처박히고 맙니다.

 

버스 조수는 산밑에서 어떤 정체모를 산 사나이를 불러오고,

그의 생사를 건 듯한 고투 끝에

한참 후 버스는 빠져나옵니다.

 

그래서 모두 해피엔딩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 오마이 업어올까유?"

"아니, 미안하게 되었우마는 오늘 비가 오구, 더구나 날이 저물지 않았우.

그리고 온천교가 어찌 되었는지 모르니까 우리 내일로 미룹시다."

 

버스는 곧 떠나버리고,

산사나이는 격분에 찬 모습으로 돌팔매질을 합니다.

 

화자는 버스 조수에게 설명을 듣습니다.

"다 죽어가는 제 어미를 태워다 병원에 갖다 달라니, 길에서 송장 보겠습니다."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다주겠다고 꼬여놓고는,

정작 힘써 도와주자 매몰차게 떠나버린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i2g0608/70092061070> 

 

 

화자는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제 어미를 구하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버스와 승객들을 구해내었구나.

그러나 그는 아무 보상을 받지 못하는 구나.

 

산사나이에 대해 설명이 조금 더 붙습니다.

S골 부호였던 김진사가 유부녀를 겁탈해 난 자식이 그 사나이였고,

어찌된 영문인지 이 두 모자는 산막으로 쫓겨나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쫓겨나 은둔하는 첩과 그의 자식,

세상에 천대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늘 속임을 당하고 이용될 뿐입니다.

 

이렇듯 강경애 소설에선

거창한 구호 없이도,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든, 사회는 그들을 이용하고 착취할 뿐이라는

냉정한 현실인식이 엿보입니다.

 

강경애 특유의 사실 묘사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정확한 사회인식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단편 소설입니다.

 

193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

강경애 소설,

꼭 한 번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일제시대에 쓰여졌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쉽게 잘 읽힌답니다.

 

혹시 강경애 문체를 맛보고 싶으신 분은,

더 보기를 눌러주세요. ^^

 

더보기

강경애의 문체는 소름끼치도록 너무 적나라해서

정말 눈앞에 그 정경을 목도하는 듯한 느낌을 줄 때가 많습니다.

 

 

"좀 자려무나. 요 계집애야, 왜 자꾸만 머리를 뜯니. 조놈의 계집애는 며칠째 안자고 세웠단다. 개똥 어머니가 쥐가죽이 약이라기, 쥐를 잡아 저리 붙였는데 자꾸만 떼려구 저러니 아마 나으려구 가려운 모양이지."

그렇다고 해줘야 어머니는 맘이 놓일 모양이다. (중략) 

어머니는 연방 아기를 보고 그의 젖을 주물러 본다. 명주 고름끈같이 말큰거린다. 아기는 점점 더 할딱할딱 숨이 차오고, 이젠 손을 놀릴 기운도 없는지 손이 귀밑으로 올라가고는 맥을 잃고 다르르 굴러 떨어진다. (중략)

"어마이 저것 봐!"

칠운이는 뛰어 일어서서 응응 운다. 그들은 놀라 일시에 바라보았다.

아기는 언제 그 헝겊을 찢었는지, 반쯤 헝겊이 찢어졌고, 그리로부터 쌀알 같은 구더기가 설렁설렁 내달아오고 있다. 

"아이구머니 이게 웬일이야 응, 이게 웬일이여!"

어머니가 와락 기어가서 헝겊을 잡아 젖히니, 쥐가죽이 딸려 일어나 고피를 문 구데기가 아글아글 떨어진다. 

"아가, 아가 눈 떠, 눈 떠라 아가!"

이 같은 어머니의 비명을 들으며 칠성이는 '엑!' 소리를 지르고 우둥퉁퉁 밖으로 나와 버렸다. 

 

강경애, 지하촌 

 

 

이 장면 읽을 때, 여름 반팔을 입고 있을 때였는데 갑자기 두 팔에 소름이 오도독 돋아났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칠성이처럼 방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더군요. 여러분은 어떠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