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단상

예수를 잃어버린 기독교, 불편하다

차라의 숲 2010. 11. 3. 15:17

 

 <출처: http://bolg.paran.com/johan104>

 

봉은사 야경입니다. 참 예쁘죠?  

삼성동 코엑스몰에 나갈 때면, 대개 봉은사에도 발걸음을 하게 됩니다.

최첨단 도심 한복판에서 고즈넉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휴식처 같은 공간이니까요.

그런데 이 공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분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일명 '봉은사 땅밟기'(무슨 새로운 놀이라도 생긴줄 알았습니다)라는 동영상을 저도 봤는데,

동안 일부 기독교인들의 선교행태를 감안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속내는 '정말 어이없다'...였습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하고, '사찰아 무너져라' 집단 통성기도하고,

단군상의 목을 베고, 엄연히 종교가 다른 나라에 들어가 종교분쟁을 일으킬 정도로,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 비자 내주는 걸 꺼리는 나라가 생길 정도로 과격한 선교활동에 목매는...

이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쪽팔리는 일일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고뇌, 그리고 고난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때문에 눈물 흘리며 한 번이라도

'주의 뜻대로 살겠나이다'라고 다짐해본 사람이라면,

정말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럽고 부끄럽겠다...생각했습니다.

 

 

 

광야에서 40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진리를 참구했던 예수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어리가 되게 하라"는 마음 속 빈정거림과 의심, 회유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마 4:3-4)이라는 깨달음을 얻으셨지요.

  

 

그 '말씀'은

제가 이해하기로,

예수님에게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

목마른 영혼들에게 갈급한 물과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과

아픈 이들에게 치료를 해주고

귀신 들린 이들에게 해방과

창녀와 같이 천시받는 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주는 것...

그것이 아마 그가 꿈꾸던 하나님의 나라요,

그가 이 세상에서 제자들에게 널리 퍼뜨리고 싶어했던 가치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죽음 직전까지 자신을 몰고가며 광야에서 얻었던 깨달음과

그 가르침은

오늘날 그저 한낱

문자 속에 박제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누가 37-42)

 

 

요즘 계속 물의를 일으키는 기독교인들...

혹시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 속 티를 빼내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닌지...

 

전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을 깎아내릴 생각이 없습니다.

전 그들의 신앙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을,

저 역시 사랑합니다.

비록 기독교인들의 그것과 다른 지점이 있겠지만,

제게 예수는 '늘 좋은 친구,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믿고 사랑하는 예수님이

모욕당하고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것도 당신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높이겠다며 저지른 행동들이어서

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얼마전 '여강여호'라는 닉네임(http://yeogangyeoho.tistory.com/175)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의 글을 읽고, 정말 공감한 대목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동시대에 살아계셨다면, 요즘 말로 절친이셨을 거라는 말씀이었는데...

정말 그랬을 겁니다.

 

 

 

이 초상화가 누구의 초상화같으세요? 예수님을 닮지 않았나요? 실제 초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영박물관에 소장돼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41세때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분인 브루나 존자의 작품이라고 소개돼있는데, 그것의 진실 여부와 별도로, 예수님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정말 두분이 동시대에 태어나 조우했더라면, 아마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진심으로 존경하며 고마워하는 그런 문명사, 아니 우주사적인 우정을 쌓아가지 않았을까요? 누구처럼 헐뜯고 비방하고 손가락질하며 저주하는 대신에 말이죠.

 

불교계는 이번 동영상 사건으로, 누적돼왔던 감정이 불끈 올라온 것 같습니다. 지난 2일, (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일부 개신교인의 불교 폄하행위를 비판하며, 종교 평화를 위해 (가칭)‘종교평화 윤리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생략)...개신교는 영적전쟁을 선포했지만, 우리 불교는 우리 모두 상생 공존하는 종교평화를 간절히 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다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인내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인내도 한계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우리들의 인내를 더 이상 시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하략)"

 

 "인내도 한계가 있다"고 표현할 정도니, 그동안 계속 참아왔던 모양입니다. 오죽했으면 이렇게까지 말했을까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세상사대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부처님이라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스쳐갑니다. 부처님이라면, 그냥 빙긋이 웃지 않으셨을까요?

 

부처님의 일화를 소개하고 이 긴 글을 마치렵니다.

 

어느 날처럼 부처님께서 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집 앞에 이르렀는데, 그 사람이 부처님을 보자마자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습니다. "육신이 멀쩡한데 왜 남에게 밥을 빌어먹느냐?"는 거죠. 이건 경전에 점잖게 기록된 거고, 실제로는 쌍시옷이 들어가는 욕설을 퍼부었겠죠? 그런데 그 사람의 욕설에도 부처님께서는 그저 빙긋이 웃으십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 좀 기가 막혀서 따지듯 말합니다.

"내 말이 아니꼬우냐? 왜 웃냐?"고...(화가 나있는데 상대가 웃으면 기분 나쁜 법이잖아요. ^^;;)

그러자 부처님께서 "당신 집에 가끔 손님이 오십니까?"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럼, 손님이 오지"

"손님이 오실 때 선물을 가지고 오기도 합니까?"

"그렇지"

"만약 손님이 갖고 온 선물을 당신이 안 받으면 그 선물은 누구의 것이 됩니까?"

"그야 선물을 가지고 온 그 사람 것이겠지"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시 빙긋이 웃으시며, 

"당신이 나에게 욕을 했는데 내가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 욕은 누구의 것이오?"라고 묻습니다. 

그때 이 사람이 탁 깨닫습니다. 

"부처님, 잘 알았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처님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을 대놓고 욕설하는 사람에게도 그저 빙긋이 웃어주시고, 그 욕을 받지않으니 내 문제가 아니다, 나를 보고 화를 내는 네 마음의 문제이니 네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

 

 법륜스님, '붓다, 나를 흔들다' 중에서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