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소리

"문장은 어떻게 영혼을 구원하는가" - 이정명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고

차라의 숲 2012. 9. 17. 09:00

 

이정명의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은행나무, 전2권)을 다시 읽었다. 첫번째 읽을 때는 추리소설이 주는 재미 때문에 간수 스기야마 도잔과 죄수 윤동주의 관계를 쫓느라, 뒷장을 참지 못하고 급히 읽어내기 바빴다. 음미하고 싶은 구절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지만, 궁금증을 차마 이기지 못하고 서둘러 뒷장으로 넘어갔다. 2권까지 완독한 뒤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그저 기약없는 다짐일 뿐. 걸신들리고 허기진 듯 나는 새로운 책을 찾아다녔고, 읽고 싶은 새로운 책들은 늘어만 갔다.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처럼 윤동주 시인이 다가왔다.  MBC스페셜 "가을, 윤동주 생각"(2011년 제작)(클릭하면 동영상 보기)을 접하고서였다.

 

오늘은 윤동주라는 생존 인물이 아니라, 이정명 작가가 윤동주를 불러들여 문장들을 빚어내고, 시대를 녹여내어 결국은 문학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솜씨를 음미하려고 한다.

 

어떤 말은 단순한 소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떤 말은 수천 년을 살아남은 영혼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의를 숨기고 있다. 삶의 신비는 언어를 통해 드러나고 구현된다. 나는 우리의 입을 통해 파열되거나 마찰되는 자음의 신비를 알고 있다.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모음의 우아함도 알고 있다. 그것들은 섞이고 마찰하고 충돌하면서 음조와 의미와 분위기를 만든다. (1권 pp.36)

 

문자, 말, 단어, 문장, 그리고 시(詩)

 

이정명 작가는 스스로 시인이 되어 말의 향연을 음악처럼 아름답게 토해낸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 역시 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자음의 신비와 모음의 우아함'을 불현듯 느끼고 만다.

 

간수 스기야마 도잔이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을 읽고, "상징은 꽉 짜인 구조 속에 긴밀히 소통했고, 단어들은 어울리며 의미를 증폭시켰다"고 고백하듯. 조선어인지 일본어인지 문자의 구별은 시인의 영혼과 맞닿아있고,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과 '왕조의 유물', '부끄런 고백',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 등 단어들의 조합은 시인의 삶을 그려낸다. 그래서 나같은 시에 무지하고 무딘 감성조차 벼락처럼 울컥하게 만든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1권 pp.64)

 

 


별을 스치는 바람. 1

저자
이정명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2-07-1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잔인한 전쟁도 막을 수 없었던 자유와 문학에의 갈망!뿌리 깊은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언어는 한 인간의 총합이오. 한 인간의 언어는 그의 지문과 같소. 그의 출생과 성장, 기억과 과거를 모두 간직하고 있죠." (1권 pp.87)

 

그랬다. "어휘와 음절과 구문, 동사와 명사와 형용사와 수많은 구두점으로 조립된 시인의 詩는 "인간의 의지를 북돋우고 용기를 자극하고 삶을 바꾸어놓았다."(1권 pp.83)는 작가의 말대로, 시대를 뛰어넘어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권 pp.82)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권 pp.265)

 

잃어버리고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몰라 주춤주춤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시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어딘지 모를 길 위에서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그렇지. 하늘은 내가 방황을 하건말건 부끄럽게도 여전히 눈부시게 푸르르더라.

 

그때 왜 그런 고백을 했던가. 젊은 날의 부끄러움이 부끄러움보다 더한 부끄러움으로 짓누를 때, 그래서 우물에 비친 내 모습이 미워져 돌아서버릴 때, 그러나 어쩐지 가여워 돌아오고 다시 미워졌다가 결국 또 그리워하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아니,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시인의 올곧은 성정이요, 범부를 뛰어넘는 비범함이구나.

 

나라를 빼앗긴 참혹한 시대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당연하던 그 비극의 시대에

제 한 몸 누일 다다미 방조차 부끄러워했던 시인의 순결함을 확인하자,

저절로 고개가 수그려지고

몹시 부끄러워진다.

 

더 이상 목숨을 내놓지 않아도

제 나라 제 언어를 마음껏 편하게 사용하며

즐길 수 있는 이 시대가

누구의 힘으로 만들어졌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이렇듯 누군가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

그것이 시인의 힘일게다.

 

이정명 작가는 시를 이렇게 말한다. 

 

"말씀 언(言)변에 절 사(寺). 시(詩)는 말의 사원이지요."

 

사원이 어떤 곳인가? 그건 정결하고 신성한 영혼이 머무는 장소가 아니었던가. 죄 지은 자들이 용서를 구하고, 세상에 지친 자들이 위로를 받고, 영원을 갈구하는 자들이 기도하고, 천국을 갈망하는 자들이 소원을 비는 곳. 그렇다면 시는 말 중에 가장 깨끗하고 낮은 말들의 집이라는 건가? 영혼을 구원하진 못하지만 위로하는 말, 영원을 약속할 순 없지만 영혼을 꿈꾸는 말들의 집? 

 

"시는 영혼을 비추는 우물이에요. 우리는 어두운 영혼의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던져 진실을 길어 올리죠. 그리고 시로부터 위로받고, 시로부터 배우며, 시를 통해 구원받아요."(1권. pp.236)

 

"시인이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니까요." (1권. pp.238)

 

"시는 삶이에요. 당신은 당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시를 써왔어요. 잉크로 종이 위에 쓰는 대신 온몸으로 거리에다 시를 썼죠."(1권, pp.239) 

  

그리고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정명 작가에게 매료되고 만 것은.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읽기 전의 사람이 아니다. 문장은 한 인간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불치의 병이다. 단어와 구두점들은 몸 여기저기에 세균과 바이러스처럼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문장들은 뼈에 새겨지고 세포 속에 스며들고 자음과 모음은 혈관을 타고 흐른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는 뇌세포를 물들이고 영혼을 재구성한다. 그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가서도 안 된다. (1권 pp.220)

 

너무나 명징하게 다가온 진리였다.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변하게 했고, 한 자의 단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바로 그것이 "글이 지닌 힘"일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웅변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진리란 그런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며, 저절로 수그리게 된다.

 

그랬다. 내가 시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은.

나는 이 책을 읽기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변해버렸다.

한 위대한 시인을 알아버렸고,

그 시인으로부터 시가 인류사에 미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느끼고 말았다.

곧 "문장이 어떻게 영혼을 구원하는지"

내 몸과 감각과 생각들 속에서 체험하고 깊이깊이 새겨넣었다.

 

이렇게 거친 감상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채

그저 쏟아내고 있는 것도,

내 나름의 새겨넣는 작업인 셈이다.

 

시인은 한 사람의 삶만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의 시는 살아 숨쉬어 질긴 생명력을 스스로 획득하고,

높은 우주에 떠올라 홀로 찬연히 빛난다.

 

아무리 어리석은 전쟁광들이 그의 시를 불살라버리라고 명령해도,

그것의 어리석음을 아는 이들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몸에서 몸으로,

각자의 인생과 사상 속에서

계속해서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기어이 되살리고 만다.

 

스기야마는 생각했다. 언젠가 전쟁은 끝나고, 전시동원령도 거두어지고,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남는 것은 상처 입은 마음과 몸 뿐이다. 누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아픔을 치유할 것인가? 어떻게?...(중략)...전쟁과 싸워 이기는 인간은 없다. 죽음과 싸워 이기는 인간이 없는 것처럼. 전쟁이 끝나면 모두가 패자다. 승자조차도 자신이 얻은 승리 때문에 고통 받고 파멸당한다. 그러니 이기는 자에게도 지는 자에게도 위로는 필요하다. 전쟁으로 상처 입는 것은 똑같으니까. 스기야마는 말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그의 시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의 모든 시를 태워 없애는 것은 제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1권. pp.258-259)

 

윤동주 시인의 다큐에서 그를 사랑하고 추모하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이정명 작가의 예언이 겹쳐 떠올랐다.

 

"나는 그를 잃어야 하는 것이 분했다. 그를 잃어야 할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였다. 나는 친구를 잃어야 하겠지만 조선인 죄수들은 현명한 동료를, 간수장은 용서를 빌 대상을, 간수들은 온화한 모범수를 잃을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조선인들은 위대한 스승을 잃을 것이고, 태어나지 않은 일본인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증언할 지식인을 잃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가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지지 못할 순결한 시인을 잃어야 할 것이다."(2권, pp. 240)

 

생전에 시집 한 권 내지 못했던 한 시인은,

시를 남겼기에 영원한 별이 되었다.

 

 

별 헤는 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노래하는 아이들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를 평소 즐겨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도

감성의 마지막 보루처럼

우리를 든든히 지켜주고 성찰시킬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제란 말인가.

태풍이 몰려오는 이 시간,

모든 시인에 감사를...

윤동주 시인에 특별한 감사를...

그리고 이정명 작가에게도 따뜻한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