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소리

[고전읽기]플라톤의 국가 1권. 올바름에 대하여...

차라의 숲 2012. 9. 11. 18:30

플라톤의 국가를 읽기 시작했다. 오늘 겨우 1권(A알파)을 읽었다. 아아 난해해라.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가 열심히 논지를 펴는 장면에서, 한글을 읽고 있는데, 도무지 못 따라가겠는 거다. 인내심이 필요했다. 이 시대와 인물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너무 없어서다. 고전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감자나 고구마 알 캐기 같은 건지도 모른다. 하나를 알려고 하면 줄줄이 달려나오는 다른 여러 개의 질문들을 만나게 되는. 그래서 일단 가볍게 읽고, 그 중에 인상적인 것만 기록해보려 한다. 궁금한 사항들은 다른 정보를 찾아본 뒤 다시 읽어봐야겠지.

1권은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가 설전을 벌이는 내용이다. 올바름이란 대체로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로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마이클 센델 식의 정의는 아닌 것 같다. 역자의 말대로, '올바른 상태'라고 하는 게 오히려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생각에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기사 마이클 센델의 베스트셀러를 읽어보지 않은 나로선 이리 속단하기도 어렵지만. 책은 서광사에서 펴낸 '플라톤의 국가'(박종현 역, 2005년 개정증보판)이다. 인용문은 내가 이해하기 쉽게 임의대로 축약하거나 문장을 완전히 변형시키기도 했다. 공들여 역주서를 내주신 박종현 선생님께는 크게 누를 끼치는 일이지만, 안 되는 머리로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노력한 흔적이니 부디 널리 양해해주시면 좋겠다.   

 

1. 올바름이란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아주는 것?"

 

상당한 재산가로 알려진 케팔로스 옹의 집에서 별안간 올바름이란 무엇인지 토론이 오간다. 케팔로스의 큰아들 폴레마르코스-이름이 어렵다. 끙~-는 당시 유명한 서정시인 시모니데스의 얘기를 빌어 "올바름이란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속해서 그는 "친구에게는 친구가 잘 되도록 해주되, 적들에게는 잘 못 되게 하는 것이 올바름"이라고 주장한다. 좋은 이에게는 상을 주고, 나쁜 놈에게는 벌을 내리는 것,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올바름이요, 정의(justice)인 셈. 

 

그의 주장에 아주 쉬운 질문 하나. "그렇다면 친구와 적을 누가 가름한다는 거지? 또 그 친구가 올바른 사람이라는 걸 누가 판단한다는 건가?"(이건 내 의문)

 

소크라테스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친구들이라 말함은 (당신이) 선량한 사람이라고 판단한 사람을 가리키는가요, 아니면 실제로 착한 사람을 말하는 가요? 적들도 마찬가지로 나쁘다고 판단한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실제로 나쁜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pp.72-임의대로 축약변형했음)

 

자기가 선량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못된 이들은 미워하는 것 같다는 폴레마르코스의 대답에, "바로 그렇게 판단을 잘못해서 실제로는 착하지 않은 사람을 선량하게 보거나, 실제로는 착한 사람을 나쁘게 보거나 하는 게 아니냐?"고 다시 질문한다.

 

이렇게 잘못된 판단으로, 올바른 일을 행한다는 것이 도리어 나쁜 사람들을 도와주고 좋은 사람을 해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폴레마르코스는 착하다, 나쁘다 판단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real의 의미인듯)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에게 각각 이익과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고 말을 살짝 바꾼다. 그런데 실제로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라는 게 있는가? 사람마다 자기 인연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할진대. 게다가 상황에 따라서도 좋은 사람이 됐다가 나쁜 사람이 됐다가도 하는데. 하여간 이건 내 질문이고.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나 올바르다는 것은 곧 훌륭하다는 것인데, 훌륭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봤는가? 나쁜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더 나빠질 뿐 그는 결코 훌륭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 할 짓이 아니므로,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없다."(pp.75 내용 변형)

 

여기까지가 거칠게 본 전초전이다. 폴레마르코스는 소크라테스에게 기본적인 존경심이 있는 자여서인지 금방 수긍하고 설복한다. 그런데 이 둘의 대화에 끼여들지 못해 안달복달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트라시마코스다.

 

"그는 더 이상 잠자코 있지 못하고, 마치 야수처럼, 혼신의 힘을 가다듬어 찢어발기기라도 할 듯이 우리한테 덤벼오더군"(pp.77)이라고 묘사했듯이, 소크라테스는 그의 거친 기세에 무척 놀랐던가 보다. 그저 엄살인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트라시마코스는 평소 소크라테스에게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는 듯 시종일관 예의가 없다. ㅎㅎㅎ

 

얼마나 예의가 없냐면, "선생은 늘 스스로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 남이 대답을 하면 그 주장을 붙들고서 논박을 하시는 식이죠"(pp.81)라거나,  "방금 말씀드린 걸로도 설득이 안 되셨다면, 제가 선생께 무얼 더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제 주장을 선생 머릿속에 집어 넣어드리기라도 할까요?"라고 비아냥대는 것은 기본, 궤변가라고 비난하거나 소크라테스에게 흐르는 콧물을 닦아줄 보모도 없는 것 아니냐고 공격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대목들이 도리어 읽는 재미를 준다. 토론할 때 소크라테스처럼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트라시마코스처럼 제 생각이 절대 옳은양 강하게 주장하고, 상대에게 절대 설득되지 않겠다 강짜부리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때론 유치하게 상대의 말 꼬투리를 잡고 늘어진다거나 약점을 파고들면서. 하여 트라시마코스의 태도가 무척이나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

 

2. 올바름이란 "더 강한 자의 편익?"

 

트라시마코스가 단언한다. 올바름이란 더 강한 자의 편익이라고. 나라마다 통치자들은 제 편익이 되는 것을 올바른 것(법률)을 공표하고, 이를 위반하면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는 자로 즉 범법자로 처벌한다. 그래서 모든 나라에서 올바른 것은 바로 그 정권의 편익이요, 강한 자의 편익이다. 다시 말하면, 통치를 받는 사람은 통치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일단 "올바른 것이 편익이 되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더 강한 자의'라는 것에 질문을 던진다.

 

 "통치자들도 간혹 실수할 때가 있는가"

"있다"

"통치자들이 자기 편익이 아닌 데도 실수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가?"

"그렇겠지"

"통치를 받는 사람들은 이러나 저러나 통치자의 법률에 복종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한다면, 통치자가 제 실수로 자기 편익이 아닌 것을 법률로 제정한 것도 마땅히 따라야할 터.

그렇다면 더 강한 자의 편익이 올바른 것이라고 하는 당신의 주장은 어떻게 되는 거지?

더 강한 자의 편익이 아닌 것을 행하는 것도 올바른 것이 되어야 하지 않나?"(pp.82-85 문장변형축약)

 

소크라테스의 이 같은 논지 전개에 당황한 트라시마코스,

"의사가 실수할 수는 있어도 실수하는 사람을 의사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느냐.

그러니 전문가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통치자도 마찬가지. 통치자는 실수하지 않는다. 

그러니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는 통치자는 늘 자기에게 최선의 것을 제정하므로,

'더 강한 자의 편익'이 올바른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pp.88)고 앞의 자기 말을 싹 바꾼다.

 

여기서 잠깐.

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다. 통치자는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다라...

수령의 무오류성...그러므로 절대복종해야 하는 나라...북한.

아아 그렇구나.

트라시마코스는 안타깝게도 자기 주장이 실현된 나라를 보지 못하고 너무 일찍 태어나 너무 일찍 세상을 떠버렸구나.

 

흠..여하간 소크라테스는 "어떤 전문적인 지식도 더 강한 자의 편익을 위한다기 보다, 오히려 더 약한 자 혹은 자기 관리 아래에 있는 자들의 편익을 위한다"는 반론을 편다. 의사와 항해술사(선장)의 예를 들면서. 만약 의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오직 환자를 위해 일하는 자라면 "그가 통솔자인 한,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오히려 통솔 받는 사람에게 이익이 가도록 지시한다"는 것이다. 즉, 올바름이란 강한 자의 편익을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 또는 다스림을 받는 자들의 편익을 위하는 것에 있다는 것. 그에 대한 세세한 예는 책을 읽어보시면 좋을듯.  

 

이렇듯 소크라테스가 반박하면할수록 트라시마코스가 뒤로 갈수록 꽁지를 내리는 형국이지만, 그의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특히 94-95쪽에서 일장연설하듯이 속사포로 쏟아붓는 그의 주장에 일견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 있으니, 바로 MB님과 그 일당들, 재벌들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들이 겹쳐보이는 주장에서다.

 

"올바르지 못한 것이 큰 규모로 저질러지는 경우에는,

그것은 올바름보다도 더 강하고 자유로우며 전횡적인 것"(pp.95)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한 자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참주정치인데, 남의 것을-그것이 신성한 것이든 세속적인 것이든, 개인의 것이든 공공의 것이든-몰래 조금씩 빼돌리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깡그리하고만다. 도둑이나 절도, 가택침입 강도, 사기꾼, 납치범들은 몰래 일부를 빼돌리다가 걸리는 경우인데 이들은 걸리면 처벌을 받고 최대의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시민들의 재물은 물론이고 그 사람마저 납치해서 노예로 부린다고 해도, 이들은 행복한 사람, 축복받은 사람이라 칭송을 받습니다. 그가 전면적인 불의를 저질렀다는 소식이 모두 알려져 있다 해도 말이죠. 올바르지 못한 행위, 즉 불의를 보고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은 자기가 피해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이지, 그 자체가 불의한 행동이라서가 아닌 거죠. 소크라테스 선생, 이처럼 올바르지 못한 짓이 큰 규모로 저질러지는 경우에는, 그것은 올바름보다도 더 강하고 자유로우며 전횡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렸듯, 올바른 것은 더 강한 자의 편익이지만, 올바르지 못한 것은 자신을 위한 이득이며 편익입니다"(pp.94-96 문장변형)

 

"절대 강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

근대교육에서는 이것이 정의(Justice)는 아니라고 배우지만,

현실에선 어김없이 통용되는 것.

 

좀도둑이나 사기 전과자들은 사법부의 처벌을 받아도,

통 크게 해먹는 도둑은 

버젓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

 

현실이 그렇기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던 자들은

올바름에 대해 더 깊은 사유와

현실 속에서 그를 실천하기 위한 걸음을 뚜벅뚜벅 내걸었던 것일게다.

때론 자기의 온 생을 다 걸고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이 올바름이었던 시대의 독립운동가들과

가난한 백성을 배불리 먹여 살리고자 했던 시대의 경제선봉장들과

독재정치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해내는 것이 과제였던 시대에 민주화운동 투사들이 그러했듯이...

 

지금 이 시대가 요청하고 있는 '올바름'이란 과연 무엇인가.

법륜스님 말씀대로,

남한 사회만 보면 양극화로 생긴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것이고,

한민족 전체로 보면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일터.

 

플라톤의 국가를 읽다가 어느새 생각이 여기까지 와버리는군.

하여간 어렵긴 하지만, 그리고 무식해서 오류를 숱하게 저지르기도 하겠지만,

고전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